경주의 사적보존지구에서는 새로 집을 짓거나 고치는 것이 금지돼 있어 허물어진 지붕조차 고치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다. 건축을 하려면 먼저 문화재 발굴조사부터 해야 하며 중요 유물이 나오면 건축은 더 이상 하지 못하고 땅은 그대로 묶이고 발굴비까지 개인 건축주가 부담하고 있다. 유물은 국가가 가져감에도 불구하고 발굴비는 개인이 부담하는 모순과 불합리가 경주에 존재한다. 그래서 개인은 공사 중에 문화재가 나오면 신고해 발굴하기보다 오히려 유물현장을 파괴하고 공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어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파괴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부가 풍납토성의 보존에 대해서는 수조원을 투입하겠다면서도 풍납토성과 가치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고도 경주의 복원과 문화재 보존에 대해서는 내버려 두고도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외칠 자격이 국민의 정부에 있는지 묻고 싶다.
풍납토성 사적지 지정과 경주경마장 건설 백지화는 한국이 역사문화의 대국으로 가는데 있어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실현시킬 실질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문화재 보존에 따른 충분한 보상체계를 담고 있는 고도보존법의 제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경주는 고도보존법 제정을 오랫동안 중앙정부에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막대한 예산부담 때문에 고도보존법 제정에 미온적일 뿐만 아니라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문화관광부장관의 새해 업무보고에서도 경주경마장 백지화에 대한 어떤 보상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충분한 보상 없이 문화재는 절대 지켜질 수 없다.
국민도 고도 경주와 문화재는 보존돼야 한다고 당위론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보존을 위해 기꺼이 세금도 부담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주는 보존돼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그 비용은 부담하지 못하겠다는이율배반적인 사고는 고쳐야 한다.
경주는 어디를 파도 유물이 나온다. 이제 경주 전역에 걸쳐 문화재 지표조사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문화재 분포지도를 제작해 발굴할 것은 발굴하고 보존할 것은 보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옛 경주를 다시 복원함과 동시에 신 경주를 시 외곽에 건설해 일방적인 보존보다는 개발의 숨통을 터 줌으로써 고도를 실질적으로 보존해 나가야 한다.
경주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세계적인 역사도시다. 경주가 파괴되면 한국이 파괴된다. 지금 고도 경주는 멍들어가고 있다. 획기적인 인식전환을 통해 고도 경주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요청된다.
임배근(동국대 교수·경제학, 전 경주경실련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