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65년. 용기와 희망도 주었고, 위안도 됐던 우리 마라톤의 두 거목 중 남승룡 선생이 엊그제 타계했다. 손기정 선생의 월계관이 우리에게 안겨준 감격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남승룡 선생은 늘 손기정 선생의 그늘에 가려 살았다. 1960년대 말 ‘젊은 사람들이 지도자로 나서야 육상이 발전한다’며 체육계를 떠난 뒤에는 바깥 나들이도 피했다. 그래서 선생은 세상의 시각으로는 ‘비운의 마라토너’였다.
▷그러나 달리기는 선생의 꿈이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보통학교 때 전국대회에서 2위를 한 선생은 가정형편상 진학하지 못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고 싶어 뒤늦게 상경해 협성학교를 다니다 육상명문 양정고보로 전학했다. 후견인의 도움으로 일본의 학교로 옮긴 선생은 1935년 11월 올림픽대표 예선전에서 4위를 했다. 손기정 선생이 1위였다. 그러나 선생은 이듬해 5월 최종선발전에서는 1위를 했다.
▷선생의 마라톤은 후반에 강했다. 베를린올림픽에서 반환점을 돌 때는 33위였으나 30㎞ 지점에서는 16위로, 34㎞지점에서는 6위로 올라서며 동메달리스트가 됐다. 선생이 정말 후반에 강했음을 보여준 건 1947년이었다. 36세의 나이로 보스턴마라톤에 코치 겸 선수로 출전한 선생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12위를 했다. 서윤복 선생이 우승한 대회였다. 선생은 기동이 불편해진 1990년 78세까지 달리기를 했다. 강인한 체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어렵고 괴로운 고비고비를 넘겨야 하는 끈질긴 정신력의 스포츠가 바로 마라톤이다. 마라톤 인생을 살아온 선생의 명복을 빈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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