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잉창치배 창설로 시작된 세계바둑대회는 지난해까지 총 34번 열렸다. 이 중 한국이 22번을 우승했다. 80년대 한국 바둑계는 일본에서 바둑을 배운 조훈현 9단의 1인 독주 시대였다. 그만큼 바둑층이 엷었던 한국 바둑이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대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 바둑의 전기는 89년이었다. 당시 조 9단이 잉창치배에서 우승했고 조 9단의 제자인 이창호 9단이 타이틀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것이 한국에 바둑 붐을 일으켰고 특히 어린이 바둑교실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93년 1000여개였던 바둑교실은 최근 2000여개까지 늘어났고 15만∼20만명의 어린이들이 ‘제2의 이창호’를 꿈꾸며 바둑을 배우고 있다. 이들이 설사 그 꿈을 접더라도 아마추어 바둑팬으로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뛰어난 기재를 보인 어린이들은 권갑용 6단, 허장회 8단, 김원 6단이 세운 소위 ‘3대 도장’에서 프로 입단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들 3개 도장은 서로 입단 경쟁을 하기 때문에 이들의 기력이 날로 향상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기원 연구생 현황을 봐도 알 수 있다. 91년 한국기원 연구생 숫자는 24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300명이나 된다. 지방 연구생과 연구생 대기조를 제외한 정식 연구생은 100명으로 1개조 10명씩 10개조로 나눠 운영된다. 입단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1∼3조까지 30명은 이창호 9단에게 정선으로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며 사실상 프로에 가깝다.
지난해 제5회 삼성화재배의 예선을 통과한 본선 진출자 16명 중 연구생에서 갓 입단한 프로 초단이 무려 3명이나 들어있었다. 한국기원 연구생들은 프로의 좁은 문을 뚫기 위해 말그대로 치열한 전쟁을 벌이기 때문에 9단보다 나은 실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이들 연구생 출신의 어린 기사들은 최근 세대 교체의 주역이다. 지난해 한국 다승 10걸에는 이세돌 목진석 최철한 박영훈 안영길 원성진 등 6명이 포함됐다.
세계 최강 이창호 9단이 한국 바둑의 수준을 높였다면 어린 기사들의 ‘타도 이창호’의 에너지가 바둑 수준 향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바둑교실, 3대 도장, 한국기원 연구생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한국 바둑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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