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美증시 '저승자사' 오나

  • 입력 2001년 2월 22일 18시 36분


예상보다 높은 물가가 미국 증권가를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1월중 소비자물가지수상승률은 0.6%로 시장예상치 0.3%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 음식료품 등을 제외한 핵심소비자물가지수 역시 예상치 0.2%보다 큰 0.3%였다. 이에앞서 16일 발표된 1월중 생산자물가지수와 핵심지수는 각각 1.1%, 0.7%로 예상치 0.2%, 0.1%를 크게 웃돌았다.

그러자 경제전망가들은 앨런 그린스펀의 ‘1·4분기중 제로성장 가능성’ 발언을 상기시키며 물가불안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가 침체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상황.

미국 경제가 정말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면 물가까지 덩달아 오르기 때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인하를 경기조절 수단으로 쓰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후속 금리인하 기대로 경기둔화 악재와 힘겹게 싸워온 미국 증시가 고립무원의 지경에 처하게 된다. 21일 나스닥지수가 연중최저치를 경신하고 안정적인 횡보세를 보여온 다우지수마저 200포인트 이상 빠진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미국증시 전문가들의 견해는 반반.

교보증권 임송학투자전략팀장은 “작년 하반기 이후의 유가 고공행진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사실상의 제4차 오일쇼크’”라면서 에너지 가격 급등에 의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그는 “보통 오일쇼크 시기에는 소비둔화가 동반한다”면서 “작년말 가계저축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나올 정도로 과열됐던 미국 가계소비가 급격히 위축할 경우 내수업종 위주의 다우지수마저 급락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임금이 들썩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굿모닝증권 홍춘욱이코노미스트는 “주가급등시에는 스톡옵션이 임금인상 요구를 완충시켜 줬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억제돼왔던 임금상승 압력이 스태그플레이션을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물가불안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금리인하 기대가 높기 때문에 3월 20일의 추가금리인하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연방기금금리 3월물의 선물금리는 도매물가지수 발표직후 5.095%, 소비자물가지수 발표 직후는 5.04% 수준이었다. 시장은 금리가 현재의 5.5%에서 0.5%포인트가량 더 인하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도소매물가지수를 달리 이해하는 시각에도 일리가 있다.

대우증권 이효근연구위원은 “작년 11,12월 미국에선 ‘100년만의 혹한’이 밀어닥쳐 1월중 물가가 좋지 않게 나올 거라는 점은 이미 예견됐다”고 말했다. 하기야 그린스펀도 13일 “악천후 때문에 작년말의 지표는 나쁘게 나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연구위원은 “유가는 작년 30달러선에서 올해 평균 26달러선으로 안정될 것으로 예상돼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적으며 다만 이번 물가 발표로 시장이 고대하던 3월 20일 이전 기습금리인하 가능성은 적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피데스투자자문 김한진상무는 “물가지수는 소비 및 원자재구매 패턴 변화에 시간이 걸려 보통 1분기 정도 후행하는 성격이 있다”면서 “2·4분기 물가지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경기조절을 위한 금리인하 행진은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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