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의 각고 끝에 금(金) 글씨로 화엄경 60만자를 써낸 지리산 벽송사의 원응 스님(66). 그는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후회한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하루 한 쪽을 쓰고 나면 이틀가량 누워 주사를 맞는 일도 있었고, 신경을 쓰다보니 변비가 심해 며칠씩 밥을 먹지 못한 날도 적지 않았다. 글씨를 쓰다가 시력이 나빠져 한때는 실명(失明)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금사경(寫經)은 그만큼 어렵다. 시주의 힘을 빌어 산 값비싼 금분이므로 글씨를 틀려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한자 한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갈아놓은 금분이 굳어버리기 전에 글씨를 다 써야 하는 부담도 크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하루 3∼4시간 이상 쓸 수 없는 게 금사경이라고 한다.
스님이 40여년간 정진해온 벽송사는 지리산 칠선계곡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한 이 절 근처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유골에 충격을 받은 그는 이들 원혼의 천도(薦度)를 기원하고 분단의 아픔을 부처님의 가호로 극복하자는 뜻에서 사경을 시작했다.
거듭되는 사경작업 끝에 화엄경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 10여년 전. 60만자를 쓰는데 닳은 붓만 60자루가 넘고 사용된 닥종이의 양도 2000장이 넘는다. 금가루 값만 억대에 이른다. 완성된 화엄경은 접철식으로 된 병풍형 책자 80권으로 이를 모두 펼쳤을 때 전체길이는 약 1300m이다. 쪽빛 닥종이 위에 정갈한 구양순체로 쓰여진 금빛 글씨는 ‘경은 읽는 것(讀經)이 아니라 보는 것(看經)’이라는 옛말을 떠올리게 한다.
오탈자를 방지하기 위해 봉은사판과 직지사판 화엄경을 일본의 신수장경, 대만의 중국장경 등과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정확하다고 소문난 신수장경도 화엄경에만 21자의 오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평생에 걸친 스님의 사경작품은 27일부터 3월 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에는 화엄경 금사경 80권을 비롯해 금사경을 하기 전 예비로 쓴 묵(墨)사경 80권, 금강경 금사경, 반야심경 금사경 등 180여점이 선보인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원택 스님은 “일찍이 사경은 선조들이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염원하는 호국의 방편으로 널리 행하였던 불가의 중요한 수행법”이라며 “이번 전시회가 고려시대 이후 거의 끊겼던 불경 사경의 맥을 새롭게 잇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