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지금은 흔해도, 프랑스 등 선진 유럽국가에서조차 합법화된 것은 프랑스혁명(1789년) 이후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부부 관계란 세속의 누구도 끊을 수 없는 ‘황금의 줄’과 같은 것었다. 아예 13세기 종교회의는 결혼을 성사(聖事)로 규정하면서 불임 간통 등 특별한 예외만을 허용했다.
이 소설은 15세기 프랑스 루이 12세가 이혼을 선언한 세기의 스캔들을 소재로 삼은 역사소설이다. 이혼에 승복하지 않은 왕비 잔 드 프랑스가 제기한 이혼소송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실명 역사소설이 주는 묵직한 재미와 죤 그리샴 류의 현대 법정드라마가 보여주는 반전의 묘미가 조화롭다.
루이 12세가 22년간 처였던 왕비를 버리는 것은 선왕의 사위일 때는 그녀가 필요했으나 왕에 등극한 뒤에는 소용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혼을 합리화하기 위해 왕비가 추녀인데다 한쪽 다리를 저는 불구자여서 22년 결혼생활 동안 한 번도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헌법이나 다름없던 교황법(Cannon)에 따르면 성 관계 없는 결혼이란 없었던 일로 물릴 수가 있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의 주장 앞에 누가 반대 논지를 펼 수 있었을까. 검사측이 공개적인 ‘처녀 검사’를 요구하는 등 왕비는 치욕적인 수모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뻔한 결론으로 치닫는 듯하던 재판은 변호사 프랑수아가 나섬으로써 순식간에 역전된다.
물론 작품의 결론은 왕이 이혼소송에 승리한다는 역사서의 기록을 거역하는 것은 아니다.예정된 결론이란 싱거운 법이지만 재판에 지는 대신 진실을 밝히고 실리를 챙기는 과정이 잘 만든 법정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이 책은 역사소설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반추하게 만드는 현실 풍자적 메시지를 던져준다. 권력에 줄을 대서 영달을 누리려는 대학교수와 전문용어를 사용해 지식없는 대중을 현혹시키려는 법조인의 모습은 어딘가 낯익은 것이다.
반대로 절대권력에 맞서는 소신파 프랑수아는 비판적 지식인의 표상처럼 그려진다. ‘인텔리는 권력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의미가 없더라도 항상 거역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권력보다 정의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300여년 뒤 출현할 신흥계급 부르주아의 원형처럼 보인다.
작가 사토 겐이치(33)는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선배 시오노 나나미의 뒤를 이어 서구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상상력을 결합한 흥미로운 역사 픽션으로 주목받는 신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대중적으로 성공한 소설에 주는 나오키상(直木賞)을 받았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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