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동북아 정상외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한국이 지난해 시작한 남북화해의 길이 동북아 안보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4강을 상대로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남북한과 중국 일본 러시아는 미국의 새 정부가 취할 동북아정책을 검토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 증진이 남북화해와 평화정착의 길로 나갈 것인지는 남북한 내의 정치변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겠지만, 4강의 동북아 정세 변화에 대한 해석과 이에 따른 대응책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도 한국과 4강의 대북정책 변화에 따라 자신들의 정책을 조정할 것이다.
▼한반도·동북아 정세 급변▼
미국의 새 정부는 ‘미국적 국제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의 세계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강화할 것이다. 이는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의 적극적인 추진도 이 전략의 일환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미국의 정책도 동북아전략의 틀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남북화해 정착은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도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패권이 손상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평화체제가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축되는 데 반대할 것이다. 따라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약화를 계속 도모할 것이다.
일본은 장기적으로 중국 러시아와 대결할 만한 독자적 세력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일본이 제외된 채 한반도 문제가 미 중 러 3국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반대한다. 따라서 일본은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 민족주의는 푸틴 정부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것은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어떤 형태로라도 발언권을 강화하려 할 것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당근(에너지 개발, 대륙간 철도 등)과 채찍(대북관계 개선, 중―러 공동전선 등)을 동원해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것이다.
이제 한국의 4강 외교에 대한 시각은 수정돼야 할 때가 됐다. 이제까지 한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는 한반도 긴장완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순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선순위를 역순으로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3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동북아 안보환경의 특성상 불가능하다. 한국이 한반도 긴장완화정책의 일환으로 동북아전략을 추구해 온 것은 4강이 동북아전략의 일환으로 한반도정책을 추구해온 것과 대조된다.
▼동북아 평화구상 제시를▼
따라서 정부는 4강이 어떤 동북아정책을 취하는 것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유리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4강이 동의할 수 있는 동북아 평화체제 구상을 먼저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통일을 4강의 동북아에서의 세력관계 정착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동북아 안보환경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가장 바람직한 동북아 안보체제는 4강의 평화공존을 공식화하고 한반도가 이 공존체제를 교란하지 않도록 하는 협력안보체제다.
정부는 이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강의 지지를 구하는 외교와 함께 우리의 동북아 평화체제 구상에 대한 4강의 지지를 구하는 외교를 병행해야 한다.
박상식(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전 외교안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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