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승철/한국판 보보스

  • 입력 2001년 2월 25일 18시 32분


보보스(bobos)란 사람들이 요즘 미국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다. 빌 게이츠가 대표적 인물. 이들은 자유정신을 추구하는 보헤미안 특성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저술가 데이비드 브룩스는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을 합쳐 보보스란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었다.

보보스는 능력주의를 철저히 신봉한다. 기존의 지배 엘리트와 달리 연고주의에 의하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를 벌인다는 것. 또 보보스는 돈방석에 앉았지만 끊임없이 자기를 비판해 속물(俗物)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

보보스란 말이 나오기에 앞서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지배계급을 디제라티(di―gerati)라 불렀다. 디지털(digital)과 지식계급(literati)을 합친 말이다. 또 화이트칼라, 골든칼라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버는 새 계층이 나타났다는 뜻에서 르네상스 칼라(renaissance collar)라고도 불렸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금융가에서는 요즘 성골, 진골, 육두품 계급논쟁이 한창이다. 성골은 부모 덕분에 청소년 시절에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선진국 명문학교를 졸업했다. 이들의 연봉은 수억원대이다. 비슷한 나이또래 직장인의 10배 가량이다.

진골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외국에 나가 경영학 경제학 박사학위 또는 경영학석사(MBA) 학위 등을 받은 이들이다. 성골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핵심 역할을 한다. 이에 비해 육두품은 국내 학교를 나온 토종으로 능력이 뛰어나도 연봉에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어느 증권사의 육두품 애널리스트는 “성골들은 우리가 뼈빠지게 힘들여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몇 마디 덧붙이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노동가치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물론 성골들의 시각은 다르다. 작업시간에 따라 똑같이 대우한다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여도에 따라야 한다는 것.

미국 UC샌타바버라대 나카무라 슈지 교수는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인물이다. 일본 기업에서 이를 만들어 회사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 주었다. 덕분에 그는 연봉이 2배 가량 오르고 평사원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라면 그는 억만장자가 되었을 터였다. 그는 “일본식 평등주의에서는 연구자의 의욕이 살아날 수 없다”며 미국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카무라 교수는 “억만장자의 꿈을 꺾는 사회는 망한다”고 경고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지난해 삼성전자 등기이사 20명에게 지급된 보수는 298억원으로 1인당 평균 14억9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6명을 빼면 사내이사의 평균 보수는 20억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월급쟁이들 사이에서는 “누구는 인삼뿌리 먹고 누구는 무뿌리 먹는가”라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한국사회엔 능력과 실적에 따른 연봉 차이 문제로 숱한 갈등이 빚어질 것이다. 한국판 보보스가 줄지어 나타나는 반면 쥐꼬리 임금을 감수하며 일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한 사람들이 수두룩해질 것이다. 양측의 마찰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인간의 능력과 노동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고승철<경제부장>che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