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美·中·日 경제충돌

  • 입력 2001년 2월 25일 18시 44분


19세기말 미국이 빈부 격차로 계층간 갈등의 골을 깊게 파고 있던 시절 잭 런던이라는 유명한 사회주의 작가가 있었다. ‘강철군화’라는 계급투쟁 소설을 통해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던 그가 100년 전쯤 우리나라에 왔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는 1904년 한반도를 아래위로 휩쓸며 벌어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 미국 신문사의 종군기자로 우리나라에 와서 쇠락의 길에 접어든 조선의 모습을 기록했다. ‘조선사람 엿보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에서 작가는 이미 시간을 꿰뚫어 현재의 세계경제구도를 예언하고 있었다.

▷일본군을 따라 중국 만주까지 건너갔던 잭 런던은 이 책에서 중국인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중국인은 검소한 일벌레들이다. 중국은 공업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석탄과 철을 막대하게 보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45억의 일꾼들이 공업화를 향해 전진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미국)를 불안하게 만들만큼 막강한 새 경쟁자가 세계시장의 무대로 등장함을 의미한다.’

▷그의 예언은 한동안 현실과 꽤나 큰 괴리를 보여주었다. 중국 공산당이 선택한 사회주의 경제의 한계 때문에 이 나라는 한 세기 가까이 불필요하게 국민적 에너지만 소모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개방정책 이후 중국의 경제는 잭 런던의 예언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작년 3700억달러에 달하는 사상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일본의 교역수지가 지난달 드디어 적자로 반전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것도 모두 중국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시장에서 중국은 이미 탄력을 받고 돌진하는 전차의 모습이다. 이제 남은 것은 미 중 일 3국간에 필연적으로 벌어질 경제적 충돌이다. 경쟁자에게 계속 무역흑자만을 허용할 동정심 많은 교역국가는 지구상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충돌이 항상 군사적 충돌에 선행되어 왔다’는 잭 런던의 주장이 초강대국 미국의 존재로 지금 당장은 현실성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미래의 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틈에 끼여 그들의 전장이 되기 십상인 우리나라의 앞길이 어떻게 될지 또다시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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