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보의 옛날신문 읽기]日誌에 실린 한국 연예인 선정화보

  • 입력 2001년 2월 27일 16시 43분


요즘 연예계 최고의 화제는 일본 포르노 비디오에 주연한 한국의 여배우 J양이랍니다.

그녀는 일본에서 '미스코리아의 섹스 비디오'라는 걸 촬영했다지요. 그런데 이 비디오가 국내로 들어와 은밀하게 유통되고 있대요. 게다가 그 동영상이 해외에 서버를 둔 포르노 사이트에 올라 나날이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는 겁니다.

적나라한 장면이 많아 '필승 비디오'를 능가한다는 소문도 들려옵니다. 어떤 사람은 '제2의 백지영 비디오' 파문으로 번지는거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심심찮게 한국 등 동남아 각국의 여성들을 상품으로 만들어 유통시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종이매체가 비디오, 인터넷 매체로 바뀐 정도의 차이랄까요.

85년 1월20자 한국일보에는 <일지(일지) 선정화보 파문-한국 연예인에 여대생 특집>이라는 제목의, 선정적인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관련단체 진상조사 나서> <시민들 "학생 등장시킨 건 몰염치한 짓"> <일부선 "외국 3류지 상대 흥분 말아야"> 등의 소제목도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 국내 톱클래스 여자 연예인들의 속옷 차림 모습과 여대생들의 프라이버시까지를 악랄하달 수 있는 수법으로 소개한 일본의 외설 대중잡지 헤이본 펀치지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영화인협회등 관련단체들이 자체 진상조사에 나서고 있으며 여대생 문제에 대해서는 문교부나 우선 학생 여부부터 가린후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일반시민들도 "연예인들의 민망한 모습을 컬러 화보에 담은 것은 모른 체 할수 있을지 몰라도 여대생 3명의 이름, 학교명, 학년까지 밝혀가며 얼굴 사진과 침실, 내의, 화장실까지 염치없이 소개한 것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생활화돼 있는 외설풍속인지 모르나 우리사회에선 국민감정에까지 치닫는 불쾌감 밖에 없다"고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일부 지식층들은 "일본의 3류 저속잡지를 상대로 해 우리사회가 너무 흥분할 필요는 없다. 냉정하게 그 잡지의 취재에 응해준 경위 등을 알아본 후 차분하게 뒤처리를 했으면 한다"고 자제론을 펴기도 했다. >

네, 이게 사건의 진상입니다. 일반시민의 반응에는 아마 반일감정도 섞여있었을 겁니다. 일부 지식층의 얘기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긴 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국내 톱클래스 여자 연예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시지요? 하하, 바로 뒷부분에 명단이 나옵니다. 좀더 읽어보기로 하지요.

< 문제의 잡지는 1월14, 21일자 합병 특대호로 2백 페이지 거의 전면을 한국특집으로 꾸몄다.

여배우 이보희양을 표지에 담은 이 잡지에는 이양을 비롯, 안소영 유지인 오수비 금보라 나영희 이미숙 오혜림 오혜경 박영실 김혜경 김청도 정윤희양 등의 화보가 실렸는데 정양의 모습은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닌 영화 스틸사진이며 나머지 12명은 직접 찍은 컬러사진.

특히 오수비양은 상체의 치부가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대담한 포즈이며 다른 모델들도 선정적인 속옷 차림과 포즈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 실린 연예인중 금보라양 등 5명의 모습에는 "부끄러워요" "저는 어때요" "한번 더" "사랑해" "좋아요" 등 선정적인 말들이 일본글자로 적혀있으며 김청도양의 페이지에는 "여러분이 일본으로 돌아가신 후 마음이 대단히 허전했습니다. 사진은 예쁘게 나왔는지요. 멋진 잡지가 되었는지요. 다시 한국에 오실 기회가 있으면 기쁘겠습니다"는 한글사연과 자필사인도 소개됐다. >

지금도 맹활약하고 있는 연예인들의 이름이 적지 않습니다. 오, 신문의 이 기록성!

시민들은 일본잡지의 특집에 대해 "학생 등장시킨 건 몰염치한 짓"이라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보니 그 과정이 잘 나와있네요.

일본잡지의 취재진은 이태원의 디스코클럽에서 한국 여대생들을 만났대요. 이들은 한국 여대생들에게 3일 밤낮을 두고 취재에 응해달라고 읍소했다지요.(읍소라는 표현이 우습지만, 기사에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읍소까지 하면서 사정을 하니 한국 여대생들은 <"할 수 없다"며 기념으로 삼고싶으니 잘 찍어달라고 응해주었다>는 겁니다. 일본 기자는 "뜻밖에 팬티도 찍게 해주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자, 이제 이 부분 각론입니다.

< 모 남녀 공학대학 2년이라는 김모양(20)의 난에는 침실과 화장대 바구니에 담은 여러 개의 팬티사진까지 게재하고 "히프와 긴다리가 자랑인 가계(家系)"라는 이양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 다음 페이지는 모여대 다니는 최모양(21)....00대 안모양(19)의....아파트에서 침대와 책상과 옷장과 화장실 내부까지 소개했다.("...." 부분은 신문이 삭아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페이지에는 신촌 일대에서 잡은 6명의 여대생 스냅 사진과 1명의 직장 여성 사진이 소개되고 일본의 여대생 거리인 다께시다 거리보다 수준이 높다고 쓰고 있다.

또 다른 페이지에는 최효숙 이승미라는 유흥가 여성과 함께 취재진이 용평 스키장과 울진의 덕구온천까지 동행하는 르포를 컬러 및 흑백사진과 함께 소개했는데, 이 기사에서도 "팬티가 몇개냐" "처녀인지 아닌지 물어도 좋은가" 등 선정적인 질문이 섞여 있다.

이 잡지는 한국의 가라오케 산업을 초동경적(超東京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하략) >

오늘은 지면 관계상 저의 왈가왈부를 생략할까 합니다. 이 원고가 <늘보의 옛날 신문 읽기> 마지막 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 부족한 글을 읽으며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며, 모니터까지 해주셨던 독일 유학생 박은수님, 서울대 학생이신 프레스맨님, 툭하면 사소한 질문과 함께 늘보의 정체가 뭐냐고 집요하게 캐묻던 중학생 안티스쿨님 등 여러 독자분들에게 머리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술 한잔 사라"는 이메일 한번 꼭 보내주십시오. 뛰어나가겠습니다.(안티스쿨님은 4년 후에 메일 보내주시길... )

그동안 제 원고를 담당해주셨던 동아닷컴의 노벰버님, 류시아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늘보<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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