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리들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김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의 대북(對北) 화해정책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는 하겠지만 부시 대통령이 클린턴 전대통령보다 북한에 대한 직접 개입에 관심이 적다고 말한다.
부시 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미국은 북한과 조심스럽게 협상을 계속하면서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따르겠다”고 말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한 고위 관료는 “우리는 남한과 북한간 협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6월 김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와 아시아, 북미와 유럽 전역에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동시에 필자를 포함해 남북한 관계를 지켜봐 온 많은 사람들은 미심쩍은 시각을 버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과거 남북한간 화해 분위기가 북한의 호전적인 태도와 폭력으로 깨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후 8개월이 지난 지금 이런 회의론이 틀렸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아시아 전문가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박사는 2주일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진 한 강연에서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새로운 길이 펼쳐지고 있다는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희망의 조짐은 일어난 일보다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북한은 반복적으로 폭력적인 위협을 해왔지만 실제로 이행하지는 않았다. 북한은 또 스페인 캐나다 등 몇몇 서방 국가들과 외교적인 관계를 수립하기도 했다.
조지 테닛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최근 의회에 출석해 “북한의 대담한 외교적 개방과 한국 포용정책은 북한의 전략에 중요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는 정치적 고립을 끝내고 국제사회의 원조를 통해 경제적 붕괴를 방지함으로써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김위원장이 무엇 때문에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적대적 전략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침내 북한 지도부도 거의 10년 동안 계속된 경제 붕괴와 기근, 취약한 보건체제 등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김위원장은 군사력도 강력한 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그는 19세기 말 ‘부유한 국가, 강력한 군대’라고 외친 일본의 예를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의 한 관영 언론은 신년호 사설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군사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경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주일 후 김위원장은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김위원장은 당시 중국에서 자본주의 색채가 가장 강한 도시인 상하이(上海)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중국의 경제개혁 주창자인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안내를 받아 미국 제너럴 모터스가 투자한 자동차공장과 일본 NEC의 제휴사인 전자회사 등을 두루 돌아봤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김위원장은 무너져가는 북한의 경제를 되살리고 싶어하며 이를 위해 외부의 도움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으로부터 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일본과 미국이 원조를 제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북한에 원조를 제공할지 여부는 북한이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 김위원장이 햇볕정책에 화답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화답한다면 한국과 미국 일본의 북한 내부에 대한 영향력이 높아져 김위원장의 정권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테닛 CIA 국장이 말한 것처럼 북한 내에 갑작스럽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햇볕’이 엄청난 ‘폭풍우’를 불러오는 셈이 될 것이다.
(전 뉴욕타임스 아시아지역특파원 ·현 아시아문제 전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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