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타임스가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로 꼽히는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서거 30주년을 맞아 지휘자, 음악사가, 음악학자 등 주요 음악관련 인사들에게 보낸 설문.
로스앤젤레스는 스트라빈스키가 러시아 혁명을 피해 서방으로 이주한 뒤 1940년 정착했던 도시다. 이를 기념하듯 LA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샌 프란시스코 교향악단, 캔자스시 교향악단 등이 올해 ‘불새’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 등 3대 발레를 비롯한 스트라빈스키의 작품만으로 풍성한 축제를 치른다.
다음은 주요 음악가들의 답변내용.
△에사 페카 살로넨(LA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유는 리듬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재미있지 않은 리듬은 단 한번도 쓰지 않았다. 그 리듬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 독창적인 것이다.
△스티브 라이히(작곡가)〓그의 음악은 청중이 친근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깊은 분석을 요하는 심오한 것이다. 이 두가지는 대작곡가가 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그와 ‘20세기 최고 작곡가’를 다투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경우 지적으로 심오하지만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음악을 썼다.
△조세프 호로비츠(음악학자)〓그는 자기 자신을 항상 재창조 재발명하는 기질을 타고났다. 그는 마치 ‘도둑 까치’처럼 수많은 샘으로부터 다양한 양식을 가져다 사용했다.
△크리스토퍼 헤일리(음악학자)〓러시아 시절의 스트라빈스키는 세기초의 사람이지만, 그는 또한 20세기 후반의 미국에 살면서 식당에 들르고 할리우드의 군중 속에 섞이면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었다. 그가 주위에 영향을 미친 것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무수한 영향들을 자신의 예술 속으로 끌어들였다.
△로버트 크래프트(지휘자·음악 칼럼니스트)〓비슷한 얘기다. 쇤베르크와 비교해보자. 스트라빈스키는 미국에 오면서 미국 사람으로 왔지만 쇤베르크는 똑같이 미국에 망명했어도 유럽을 그대로 몸에 지니고 왔다. 스트라빈스키는 미국 문화의 모든 것에 흥미를 가졌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루이스 앤드리슨 (작곡가)〓그는 ‘품격높은’ 음악과 ‘품위없는’ 음악을 구분하지 않았고 모든 음악적 요소를 섞어 사용했다. 그 결과 그는 음악이 가는 미래의 길을 지향할 수 있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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