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진흡/너무 값없는 '명예'

  • 입력 2001년 3월 4일 18시 55분


인천국제공항의 수하물처리시스템(BHS) 자동분류장치에 에러가 발생한 사실이 최근 동아일보에 보도되자 강동석(姜東錫)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전화로 강력히 항의해 왔다.

강사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를 부인하면서 “내 명예를 걸겠다”고 했다.

강사장의 ‘명예’가 추락하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인천공항의 ‘상급기관’이랄 수 있는 건설교통부가 수하물을 분류해 승객이 탈 비행기에 정확하게 실리도록 하는 시스템인 BHS의 오류를 인정하는 해명자료를 바로 냈기 때문이다. 건교부는 2월 27일 실시된 종합 시험운영에서 ‘BHS 자동분류장치에 이상이 있어 비상시스템(Fall Back) 체계로 전환했다’고 했다.

지난해 말 인천공항에 취항할 항공사들이 BHS 처리 용량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강사장은 2월말까지 처리 용량을 설계 수준(시간당 600개)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또 성수기에 대비, BHS라인 2개를 증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처리 속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라인 증설 약속은 강사장이 예산 검토없이 즉석에서 뗀 ‘공수표(空手票)’라고 공항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종합 시험 운영 당일에는 BHS에서 대혼란이 벌어져 수하물이 엉뚱한 비행기에 실리는 오류가 생겼지만 공항측은 문제가 없었다고 자랑했다.

항공사 관계자들은 “공항건설과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는 거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오류가 생기는 것은 오히려 당연할 수 있다”면서 “문제는 오류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은폐하면서 국민을 속이려 하는 공직자들의 자세”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대 사기극’”이라고까지 말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도중하차한 직접적인 이유는 ‘도청’ 자체가 아니라 바로 ‘거짓말’이었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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