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유주의 이상의 대변자로 알려진 시드니 루멧 감독의 데뷔작, ‘12인의 성난 사람들’ (Twelve Angry Men)은 미국 법정 영화의 최대 고전이다. 배심제도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미국적 자유주의에 대한 확신을 담은 작품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며, 사법도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판사가 아닌 ‘보통사람’이 사법제도를 운영하는 배심제도는 미국 자유주의의 핵심이다. 열 두 사람의 배심은 토론을 통해 합의된 결론에 이른다. 중죄사건에서는 전원이 합의하지 않으면 그 합의는 무효다.
이 영화는 진실은 참여와 토론을 통해 발견된다는 자유주의의 이상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시작과 끝을 제외하고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진지한 토론의 연속이다. 시선보다 정신을 흡입하는 흑백영화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작품이다.
무료한 표정의 판사가 배심에게 설시(說示)를 내린다. 아버지를 죽인 1급 살인죄 사건으로 유죄 평결이 내려지면 전기의자로 직행한다는 것이다.
겁먹은 푸에르토리코 청년 피고의 얼굴이 비친다. 배심이 즉시 토의에 들어간다. 열 두 사람은 백인 남자뿐이다. 중년, 노인, 갓 이민 온 사람, 사무원, 노동자. 제작 당시의 기준으로는 미국사회의 보통인의 집단이다. 모든 증거가 의심 없는 유죄로 비친다. 배심장이 선출되고 즉시 예비투표에 들어간다. 11 대 1이다. 유일한 반대자는 중년의 건축기사 (헨리 폰다 扮), 그는 ‘의심’만으로 살인의 유죄를 평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사사건과는 달리 ‘죄’를 다루는 형사사건에서는 이른바 ‘합리적 의심’을 넘는 강력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가 된다. 그의 외로운 반대의견은 무더운 여름날씨에 짜증난 사람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모두가 성이 나있다. 열 두 사람은 저마다 성이 난 이유가 다르다. 대중의 예단과 편견에 성이 난 폰다, 예상보다 길어진 토의 때문에 끝내 야구구경을 놓친 것이 화가 난 야구광, 빈민가 젊은 놈들의 파렴치에 분노하는 중산층 아저씨, 모두가 나름대로의 불만이 있다.
그러나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이름 대신 번호로 통용되는 열띤 익명의 설득과 논쟁은 계속된다. 수 차례의 투표 끝에 1대 11로 역전되고 최후의 반대자마저 입장을 바꾼 새로운 다수의 압력에 굴복한다. 전기의자 코끝까지 내몰렸던 패륜아가 대명천지를 보게된 것이다.
영화는 무성의하고 안일한 대중의 편견과 예단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러한 오류는 진지한 참여와 토론을 극복할 수 있다는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을 전한다. 이른바 ‘전문가’ 관료가 운영을 독점하는 사법제도를 가진 나라 사람들에서는 낯설기만 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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