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문명/인정은 살아 있었네

  • 입력 2001년 3월 6일 18시 37분


6일 새벽 2시반경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1층 로비. 순직 소방관들의 합동분향소에 허름한 옷차림의 40대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그는 소방관들 영정 하나하나에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다. 그는 “식당을 하는데 문 닫고 가는 길”이라면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뵐까 해서 왔다”고 말했다.

분향소에는 4, 5일 이틀간 무려 2만6000여명이 다녀갔다. 이중 절반은 학생 주부 회사원 자영업자 등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5일부터 6일 오전 영결식때까지 합동분향소에서 자원봉사를 한 주부 윤송희씨(49·서울 구로구 고척2동)는 “나 같은 아줌마들이 집에도 안가고 커피 라면 끓이고 조문객들 안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직장에 결근하고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한 임덕기씨(51·서울 마포구 서교동)는 “부모 형제끼리도 죽이는 세상에 남을 구하다 순직한 소방관들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휴먼스토리”라면서 “내가 못하는 일을 누군가가 했다는 데서 오는 대리만족적인 감동도 한몫하지 않았겠느냐”고 나름대로 분석하기도 했다.

합동분향소의 시민행렬은 모처럼 ‘한국적 인정(人情)’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조문이 끝난 뒤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한 사람들은 금방 친구가 되어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사는 것이 각박해지다 보니 인정에 더 많이 끌리는 것 아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다는 한 50대 남자는 이런 말을 했다. “몇년 전 미국의 내가 살던 곳에서도 소방관 3명이 화재진압을 하다 죽었다. 영결식날은 전 주민이 모여 국장(國葬)이라도 치르는 분위기였다. 희생과 정의를 중시하는 선진 문화를 체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빈소에 와보니 우리도 이제 삶의 겉보다 안을 보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순직 소방관 6명의 영혼은 우리 모두를 그렇게 하나로 묶고 있었다.

허문명<사회부>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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