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소방관들 영정 하나하나에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다. 그는 “식당을 하는데 문 닫고 가는 길”이라면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뵐까 해서 왔다”고 말했다.
분향소에는 4, 5일 이틀간 무려 2만6000여명이 다녀갔다. 이중 절반은 학생 주부 회사원 자영업자 등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5일부터 6일 오전 영결식때까지 합동분향소에서 자원봉사를 한 주부 윤송희씨(49·서울 구로구 고척2동)는 “나 같은 아줌마들이 집에도 안가고 커피 라면 끓이고 조문객들 안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직장에 결근하고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한 임덕기씨(51·서울 마포구 서교동)는 “부모 형제끼리도 죽이는 세상에 남을 구하다 순직한 소방관들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휴먼스토리”라면서 “내가 못하는 일을 누군가가 했다는 데서 오는 대리만족적인 감동도 한몫하지 않았겠느냐”고 나름대로 분석하기도 했다.
합동분향소의 시민행렬은 모처럼 ‘한국적 인정(人情)’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조문이 끝난 뒤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한 사람들은 금방 친구가 되어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사는 것이 각박해지다 보니 인정에 더 많이 끌리는 것 아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다는 한 50대 남자는 이런 말을 했다. “몇년 전 미국의 내가 살던 곳에서도 소방관 3명이 화재진압을 하다 죽었다. 영결식날은 전 주민이 모여 국장(國葬)이라도 치르는 분위기였다. 희생과 정의를 중시하는 선진 문화를 체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빈소에 와보니 우리도 이제 삶의 겉보다 안을 보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순직 소방관 6명의 영혼은 우리 모두를 그렇게 하나로 묶고 있었다.
허문명<사회부>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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