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소문난 ‘몸치(몸을 쓰는 운동이나 춤은 잘 못한다는 의미)’예요. 게다가 몸매가 다 드러나는 타이츠를 신고 어떻게….”
그는 ‘발레 현장체험’을 부탁하자 “정말 발레, 그 ‘백조’들이 춤추는 발레가 맞냐”며 다시 물었다. 몸치를 자처하는 그였지만 문화 현장과 가까운 방송인으로 발레 발전에 기여해달라는 ‘대의명분’에 마음을 돌렸다.
오후 6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5층에 있는 발레단 연습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어느새 세찬 눈발로 바뀌었다.
프로는 시간 약속도 ‘칼’이었다.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21세기 위원회> 녹화를 마친 그는 “늦진 않았죠”라며 현장에 나타났다. 그렇지만 탈의실로 들어간 그는 10여분을 기다려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짜∼잔’ 하고 나타난 그의 복장은 트레이닝복 차림. “조깅이 아니라 발렌덴요”라는 국립발레단 홍보팀 직원의 말에 다시 철수했다. 결국 원피스형 타이츠로 허리 부분에 짧은 치마가 있는 발레 연습복 ‘레오타드’를 입었다.
지난 1월부터 시작된 3개월 과정의 초급반 수업에는 ‘청일점’인 남성 수강생 한 명을 비롯, 9명이 참가했다. 20대 초반 대학생에서 30대 공무원과 은행원, 40대 피아노 학원장과 치과의사 등 연령과 직업이 다양하다.
정은아는 “나이에 관계없이 노출이 많은 연습복을 입은 발레반 ‘고참’들의 용기와 열의에 놀랐다”면서 “방송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설 때보다 더 떨리고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초급반 강사인 최선아씨(31)의 “자, 몸 푸세요”라는 말과 함께 수업이 시작됐다. 이에 익숙한 고참들이 털썩 주저앉아 두 다리를 최대한 넓힌 가운데 몸을 풀어준다.
“난 여기가 한계”라며 엉거주춤한 정은아의 모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음은 ‘바 워크’. 거울 옆에 길게 이어진 바(bar)를 잡은 채 몸을 풀어주면서 기본 동작을 배우는 과정이다. 잠시 해설자로 초빙된 솔리스트 원자승씨(28)는 “초보자건 프리마 발레리나건 연습에 들어가면 항상 바 워크를 먼저 한다”며 “애인의 팔을 살짝 잡았다고 생각하고 균형 감각과 몸의 중심이동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쪽 다리를 머리 끝까지 번쩍 들어올리는 스트레칭 동작 ‘데벨로페’.
수강생 중 최고참인 치과의사 최한석씨(42)가 오른쪽 다리를 끌어올려 귀에 붙였다. 뒤편에서 다리를 절반쯤 올리다 진땀을 흘리던 정은아가 ‘아니, 저 몸매에 저 동작이 어떻게’라는 표정을 지으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다시 말이 뒷발을 차는 느낌으로 힘차게 다리를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는 ‘그랑 바트망’이 이어졌다. 연습 시작한지 30분도 안 돼 정은아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정은아씨, 처음이라면서 금방 동작을 따라하는 걸 보니 감각이 대단하다”는 선생님의 칭찬에 쉴 수도 없다.
정은아는 “잠깐이지만 온몸이 노곤해질 정도로 발레의 운동량이 의외로 많다”면서 “무대에서 본 발레 동작의 ‘닮은 꼴’을 내 몸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는 “초보자는 힘드니까 조금 쉬세요”라는 말에도 “재미있다”며 무대 한가운데에서 바에 의지하지 않고 연습하는 센터 워크까지 2시간여의 수업을 소화해냈다.
● 뒤풀이 이런 말 저런 말
연습 뒤 짧은 뒤풀이가 있었다. “집안의 반대로 발레리나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다이어트 효과가 최고”라는 수강생들의 발레 예찬론과 방송을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머, 정말 피부가 좋네요.” “제가 원래 주름살이 잘 안생기는 편이예요.”(한 수강생과 정은아)
▽“우린 모두 반칙왕이예요.”(한 수강생)〓영화 ‘반칙왕’에서 직장인 대호(송강호)가 밤마다 프로레슬러로 변신하는 것처럼 자신들도 일과 발레 속에서 산다며. 발레 시간에 맞추려고 직장을 옮기려는 수강생도 있다고.
▽“샤워할 때 꼼꼼히 보세요.”(강사 최선아)〓샤워 중 목선은 물론 이리저리 살펴 몸의 장단점을 알아야 발레 수업에 공을 들인다며.
▽“10번째 선택한 게 발렙니다.”(치과의사 최한석씨)〓스킨 스쿠버, 윈드 서핑, 암벽 타기, 볼링, 재즈 댄스 등에 이어 발레를 선택했다며. 운동량도 많고 몸 만들기에 최고란다.
▽“남학생 둘 가운데 한 학생이 목에 담이 생겨 결석했어요.”(최선아)〓실제 이 결석생은 최씨의 남편인 문주혁씨(31·한미은행 국제금융부). 부인이 왜 집에만 오면 피곤하다고 자는 지 궁금해 발레를 시작했다는 후문.
▽“우리도 얼굴이 작아보이는 게 중요해요.”(정은아)〓방송에서도 작은 얼굴이 유리하다며. 강사인 최씨는 발레를 하면 다이어트 효과 외에도 바른 자세로 얼굴이 작아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립발레단은 발레 수준에 따라 초급 중급 전문반을 운영중이다. 02―587―6181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