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이따금 괴상한 일이 발생했다. 누가 계단에 몰래 소변을 보거나 쓰레기봉지를 흩트려 놓곤 했던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범인을 잡기 위해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자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때마다 진선이 엄마 역시 앞장섰다.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딸을 둔 엄마로서 교육적 차원에서도 가만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후 마침내 범인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진선이 엄마는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몇 달 째 그 짓을 한 장본인이 바로 진선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태연했다. ‘그냥 재미있어서’ 해봤다는 것이다. 엄마와 함께 병원에 와서야 아이는 진심을 말했다. “체면만 차리는 엄마 아빠가 미워서 그랬다”고. “엄마, 아빤 우리 앞에서는 온갖 욕하면서 서로 싸우기 일쑤예요.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교양 있는 척 위선을 떨죠. 게다가 제가 조금만 잘못해도 창피하게 집안 망신시킨다며 난리예요. 전 그게 정말 싫었다고요.”
알고 보니 진선이 엄마의 스트레스는 더했다. 종갓집이라 시도 때도 없이 지내는 제사에, 연락도 없이 드나드는 시집 식구 문제로 늘 골치가 아팠다. 가부장적인 남편은 전혀 이해라는 걸 몰랐고. 결국 느는 것은 부부 싸움뿐이었다. 게다가 유교적 가풍만을 강조하는 시부모님은 진선이가 버릇이 없다며 어릴 때부터 걸핏하면 동서네 아이들과 비교하곤 했다. 그게 너무 싫어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제발, 창피한 짓 좀 하고 다니지 말라”고 늘 야단을 쳤는데 결국 이번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남의 이목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적 배경 탓인가, 우리는 행동의 옳고 그름의 기준이 객관적 사실보다는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 여파가 자녀교육에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떼를 쓸 때도 그것이 왜 잘못된 행동인지 설명하기에 앞서 “창피하게 왜 이러니”하는 말로 다그친다.
결국 자기가 왜 꾸중을 듣는지 알 수 없는 아이들로서는 그렇게 남들 앞에서 야단치는 부모가 싫고 언젠가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체면을 손상시켜 주리라는 복수심을 키운다. 그리고 그렇게 터져 나온 예 중에서 심각한 것이 바로 진선이의 경우였던 것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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