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도올이 싫으면 싫다고 직접 말해라. 왜 비겁하게 말을 돌려서 하는가?”
B)“그렇게 무조건적 비판으로 도올을 매도하는 것은 철학을 다시 학자들만의 전유물로 만들려는 것이다.”
C)“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그렇게 의도적으로 띄워 줘도 되는 거냐?”
D)“자기 자랑과 오만으로 가득 찬 강의가 공영방송의 전파를 타고 나가도록 방치해 두란 말인가?”
내용이 너무 상반돼서 정말 같은 글을 보고 항의를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기사의 취지는 분명 김씨의 강의에 대한 찬반 양론을 정리하고 바람직한 논의 방향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었다. 기사의 논지에 동의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는 오히려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독자들만 탓할 문제는 아니다. 이 논란의 중심이 된 김씨와 고려대 서지문 교수의 논의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논어’를 알게 돼서 얻은 가장 큰 혜택은 ‘군자’라는 고귀한 인간상을 마음에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서 교수는 김씨와 같은 ‘소인’이 ‘군자’의 사상을 전해 줄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계속 핏대를 올리며 쇳소리로 욕을 남발하는 사나이” “공자가 제시했던 군자상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 “이런 사람이 소인이 아니라면 누구를 소인이라 하겠는가.”
사실 이런 비판 방식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는 바로 조선시대에 목숨을 건 정쟁(政爭)에서 흔히 사용됐던 싸움 방식이다. 인품과 예법 등에 대한 비난으로 논쟁의 우위를 확보하고 상대를 소인으로 몰아 반박을 봉쇄하며 ‘군자’를 자처하는 자신의 교화 및 통치권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김씨의 반박 방식도 논쟁의 전개를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했다. “9단이 9급을 상대하겠느냐” “나는 30∼40년 동안 피땀 흘려 한문실력을 닦은 사람인데 한국에서 누가 내 한문해석을 문제삼을 수 있단 말이냐” “내가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한 말이 다르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상대에 따라 표현을 달리 하는 공자의 교육방식을 모르는 것이다.”
강의에 전념하기 위해 반박하는 데 힘을 소비하지 않겠다면서도 가끔씩 던지는 김씨의 반박은 모든 비판을 차단한다. 정작 논쟁의 초점이 돼야 할 논어 해석의 문제는 논의될 여지가 남지 않는다.
학술회의에서조차 논문에 대한 비판이 곧 발표자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여겨지는 한국 학계의 풍토를 생각해 보면 건전한 논쟁이 형성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환갑이 다 된 당대 최고의 학자 이황과 30대 초반의 젊은 학자 기대승이 8년간이나 벌였던 16세기의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을 비롯해 18세기의 인성물성(人性物性)논쟁, 19세기의 심설(心說)논쟁 등 조선성리학을 당대 최고 수준으로 이끌었던 선비들의 치열한 토론문화는 먼저 상대를 존중하고 그 의견을 이해하려는 자세에서 시작됐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