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역 사건이란 1929년 10월30일 광주∼나주간 통학열차에서 한국인 여학생을 일본인 학생들이 희롱한 데 격분해 나주역에서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들이 집단 충돌한 사건.
당시 광주고보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열차 안에서 광주중학교에 다니는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3명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시비를 걸자 일본인 학생을 불러 세워 따지다 ‘조센진’이란 말에 격분해 난투극을 벌인 주인공.
당시 현장에 있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간의 패싸움으로 번진 이 사건은 결국 나흘 뒤인 11월3일 광주에서 학생들의 시위로 번졌고 이후 전국 194개교에서 5400여명의 학생이 참가한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는 나주역 사건으로 광주고보에서 퇴학당한 뒤 3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양정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광주로 돌아와 60년대 초부터 조선대 교수로 재직, 이 대학 법정대학장과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대학강단에서 물러난 뒤 광복회와 광주학생독립운동 동지회에서 활동하다 88년 국민훈장석류장과 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옥(金貞玉·85)씨와 장남 영근(榮根·55·재미 건축사), 형근(亨根·53·신용보증기금 강남지점장)씨 등 5남2녀가 있다.
발인은 9일 오후 1시 광주 한국병원,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 062―380―3043
<광주〓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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