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범죄는 어마어마한 국방 기밀 누설과는 거리가 있다. 96년 9월 미 연방수사국(FBI)이 그의 사무실을 비밀 수색하고 도청 장치까지 설치해 캐낸 범죄라는 것은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의 무관 백동일대령을 만나 정보를 흘려주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 정보라는 것조차 ‘미국이 한국만 모르게 일본 호주에는 알려준 북한 잠수함 행적 같은 것’뿐이었다.
그는 78년 시민권을 얻은 뒤 미 해군 정보국에 취직해 20년 가까이 컴퓨터 전문가로 일했다. 그야말로 간첩 행위를 하려면 얼마든지 많은 것을 빼낼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국 정부에 고용된 스파이도 아니었고, 전문적으로 정보를 판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부모 형제가 있는 나라에 대한 ‘한국식’ 애정에서 몇 마디 전해준 것이 미국법 위반이 되었다. 그 벌로 지금까지 4년반째 연방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고 있다.
그는 징역살이의 고통 속에서 미국의 가혹함과 한국의 외면 무관심에 울고 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미국 시민인 김씨의 개인적인 행위로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미국 정부에 대해 김씨 문제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수차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마다 미국은 ‘정치적 문제가 아닌 법률적 문제로서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뿐’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꺼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김씨가 ‘정부의 체면 때문에 지나친 징벌, 인권 희생을 외면하는 거냐’고 하는 항변이 우리의 귀를 울린다. 이스라엘 정부가 미국에서 간첩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은 유대계 시민권자 조너선 폴러드에 대해 취한 적극적인 태도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 김씨와 가족들의 불평이다. 실제로 폴러드씨가 갇히자 이스라엘은 국적을 부여하고, 총리가 나서서 ‘내 전용기로라도 데려오고 싶다’고 나섰던 것이다. 한국 정부는 김씨의 감형을 위해 공식 비공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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