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풍납동 재건축조합터 보상 표류

  • 입력 2001년 3월 7일 18시 59분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미래마을 재건축 조합터.

지난달 8일 문화재위원회가 이 곳을 사적으로 가지정한 뒤 조합터주변을 둘러싼 천막 안에서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앙상한’ 껍데기만 남은 집들과 쓰레기 더미,

움푹 파인 웅덩이만 눈에 띌 뿐이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의 쌀쌀한바람이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했다.》

한동안 ‘수해(水害)〓풍납동’을 떠올릴 만큼 여러 차례의 ‘물난리’로 인해 상할 대로 상한 마을을 추슬러 재기를 모색했던 102가구 미래마을 주민들은 이미 전셋집과 사글세방을 얻어 뿔뿔이 흩어졌다.

박현하 조합장은 “주민에 대해 아무런 사후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덜컥 사적지정 결정을 내린 것은 문화재위원회가 주민들을 농락한 것이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래마을과 함께 사적으로 가지정된 외환은행 재건축조합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 404가구 외환은행조합 가족들도 한 달에 총 3억원에 이르는 이자를 부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5월 문화재위원회에 의해 사적으로 지정된 경당연립 재건축부지의 경우 최근 322억원의 보상비가 마련돼 가까스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됐지만 이번에는 진통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대상 부지의 규모가 경당연립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 외환은행 부지(5061평)와 미래마을(6306평)을 합친 면적은 경당연립 부지 면적(2300평)의 5배에 육박한다. 경당연립에 준해 보상할 경우 보상금만 1500억원을 웃돌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사적지정이 현재 가지정 상태여서 본격적인 보상대책 논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문화재청측과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만 말했다.

보상재원도 그렇지만 정부의 ‘땜질식’ 처방도 문제다. 풍납토성 내 땅 밑에서 어떤 유물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토성 내 주민들의 완전한 이주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거나 가지정된 부지는 풍납토성 내 전체 면적(22만6000평)의 6.2%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는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풍납토성 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서는 풍납토성 전체를 사적으로 지정해야 한다”며 “정부가 땅을 매입해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대토(代土)방식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서울시 등은 “대토에 의한 주민이주 방식은 비현실적”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상황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 곳 주민들의 불만만 쌓여가고 있다. 경당연립이 사적으로 지정된 뒤 풍납토성 내 거의 대부분 지역은 집에 대한 개보수조차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부동산 거래가 끊긴지 오래됐다고 주민들은 목청을 높였다. 송파구 관계자는 “주택 개보수에 대한 요청에 대해 문화재청이 단 한 건도 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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