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상섭/감상적 대외정책 경계한다

  • 입력 2001년 3월 8일 18시 36분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과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를 둘러싼 때아닌 해프닝이 있은 직후라 약간이나마 불안감을 느낀 사람도 없진 않았겠지만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처음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그런 대로 제법 괜찮은 모양새를 갖추고 끝났다.

▼한미정상 의견차에 주목해야▼

정부가 공들여 지어놓은 남북화해 분위기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주변적 조건들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역시 미국의 적극적 지원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의 북한관은 상당히 비판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태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정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이른 방미도 당연히 그런 각도에서 이해된다. 정부의 이런 사정을 미국이 모르지 않기 때문에 양국간 의견 차이에 대해 이미 상당히 확인된 이상 정상회담에서 그 점을 재삼 강조할 이유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미국은 아직도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회의에 대해 대단히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화해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등 긴장완화의 징후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화해 노력을 평가절하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일단 이번 회담을 통해 한미협조의 틀이 근본에 있어서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이 재천명되긴 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제반 문제의 대응방안에 관한 세부사항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점에 대한 미국측의 시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을 계기로 확인된 의견 차이가 원론적 합의보다 향후 국제정세 전개와 관련해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현재 한미간 이견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북한문제다. 한미 양국의 문제틀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북한은 대단히 다르게 인식된다. 한국의 현정부 입장에서 북한은 같은 민족이고 통일과 화해의 대상으로 규정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여전히 안정된 세계질서의 잠재적 교란자로서의 성격이 변했다는 증거도 없고 대외적인 약속이 이행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북한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북한이 문제의 유일한 원천이라면 이 두가지 입장 차이는 상대적으로 쉽게 조정될 수 있을지 모른다. 북한의 문제는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 편성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국익과도 직결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한반도 통일의 문제가 우리에게는 큰 정서적 문제지만 주변 관련국 입장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허락지 않는 세력의 문제다. 정말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우리의 21세기 시작은 20세기 시작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가 경계돼야 한다. 대외정책과 관련해 가끔 등장하는 아마추어리즘 및 정치적 선전과 묘하게 혼합된 감상주의다. 정치의 세계에서 모든 행동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되고 그것은 다시 의도로 추정된다. 이 점을 모르고 행동하면 그것은 아마추어리즘이다.

▼北변화 증거대야 美의혹 걷혀▼

한편 민족주의의 명분 하에서 제기되는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갖는 복잡한 함의에 대해서 냉정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 순수한 반미론이 주장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결과로 판단되는 정치의 세계에서는 순수란 성립되지 않는다. 아마추어리즘과 감상주의는 대부분 같이 가고 그것에 근거한 행동의 정치적 결과는 예외 없이 의도와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거두절미하고 김대통령의 원래의 방미 목적이 미국의 NMD 정책에 대한 정부 입장의 해명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원론적 지지를 보내면서도 북한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분명히 했다. 따라서 미국의 적극적 지지를 얻기 위해 정부는 북한변화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됐다. 이를 위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보다 투명한 태도를 취해야 할 텐데 정부가 그것을 유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지렛대를 갖고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상철(서울대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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