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을 가진 경영자는 J씨뿐이 아니다.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26%가 분식 결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분식 결산의 이유는 △기업의 신용도가 악화돼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거나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 등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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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분식 결산을 통해 만들어진 허위 정보는 선의의 투자자와 채권자, 협력업체에 손해를 끼친다. 또 회사를 회생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종업원과 회사에까지 피해를 준다. 결국 부실은폐→채권은행 부실→공적자금 투입이라는 과정을 거쳐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입힌다.
▽유형과 실태〓분식 결산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보면 △가공 매출의 계상 △자산의 과대 평가 △비용과 부채의 과소 계상 등이다. 부채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가장 악질적인 수법.
96년 부도난 기아자동차의 경우 44년 설립이후 단 1년만 흑자를 냈지만 장부상에는 줄곧 흑자로 기록됐다. 기아, 아시아차는 91년부터 7년간 장부조작으로 4조5000억원의 손실을 축소했다. 91년부터 회계 감사를 담당했던 청운회계법인이나 금감원조차 이를 발견해내지 못했다. 대우그룹의 회계 조작 금액은 금감원 발표 기준으로 23조원에 달한다. 이밖에 한보는 6920억원, 최근 부도난 동아건설의 경우 회사 회생을 위해 7000억원대의 분식 결산을 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금감원이 90년부터 2000년까지 감리한 결과에 따르면 총 감리대상 1398개사중 37.5%인 524개사가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감사를 담당한 공인회계사에 대한 처벌은 대부분 가벼운 징계에 그쳤다.
▽정부의 분식회계 대책〓국회가 지난달 말 통과시킨 외부감사법―공인회계사법의 핵심은 세가지. △특정 기업의 회계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대표 회계사 및 실무 회계사의 3분의2를 4년마다 바꾸고 △회계법인 선정을 최대주주가 아닌 2,3대주주―채권은행―사외이사가 참여하는 감사인 선임위원회가 결정 △분식회계시 회계법인에게 과징금(5억원 이하) 부과 등이다. 그러나 개정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금감원 최진영(崔晋榮)회계제도실장은 “4년교체 규정은 감사인의 독립성을 높일 수 있고 과징금 제도는 회계사의 바른 일처리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회계법인을 선임위원회가 정하도록 한 것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측면에서도 평가할 만 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회계연구원 김일섭(金一燮)원장은 “이번 개정법은 대우분식 문제가 본격화하기 전에 초안이 만들어진 것으로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원장은 특히 “지난해 처음 시도된 선임위원회가 대주주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없다”고 우려했다.
▽대안은 없는가〓회계전문가나 시민단체가 제시하는 회계제도 개선안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수임료 현실화와 △회계감사 시기 분산. 안건회계법인 출신의 한 회계사는 “LG전자를 감사할 때 7명이 2주간 실시했지만 내가 서명한 보고서의 품질을 내가 믿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회계법인이 수임료에 상응하는 최소 인력만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안진회계법인 양승우(梁承寓)대표는 “지금은 3억∼4억원대까지 올랐지만 외환위기 직전만해도 시중은행 감사수수료가 1억원도 못미쳤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80%가 12월에 결산시점이 몰려있는 것도 가뜩이나 허술한 회계감사의 부실화를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서일 회계법인의 유상열 회계사는 “1월부터 3월까지 눈썹이 휘날리게 뛰다보면 의심나는 대목이 나와도 그냥 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별로 3, 6, 9, 12월등 결산일을 분산시키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내부고발 장려△소액주주 집단 소송제 등의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참여연대 하승수회계사는 “대주주와 경영진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제의 빠른 도입만이 대주주가 느낄 유혹을 떨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훈·김승련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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