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문사 관계자'들이 말하라

  • 입력 2001년 3월 9일 18시 51분


지난날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그 중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나 사인(死因)이 석연치 않은 ‘의문의 죽음’도 적지 않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자살이나 사고사로 발표됐으나 사실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됐다며 유족들이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서를 낸 사건이 80건에 이른다.

최근 ‘의문사 1호’로 꼽히는 최종길(崔鍾吉) 전서울대 법대 교수의 정확한 사인이 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 본격 활동에 들어간 진상규명위가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데다 미국에 살고 있는 최 교수의 동생 종선(鍾善)씨가 일시 귀국해 당시 중앙정보부의 발표가 조작이었음을 입증하는 새로운 증언과 자료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법치(法治)를 세워야 한다’며 유신독재에 맞섰던 최 교수는 73년10월16일 당시 중앙정보부에 자진 출두해 이른바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받던 중 숨졌다. 중앙정보부는 투신자살이라고 발표했으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뤄 처음부터 고문치사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공교롭게도 중앙정보부 감찰실 직원으로 근무했던 동생 종선씨가 자살 발표는 조작이라는 정황증거들을 제시하며 정부에 진상규명을 청원했지만 번번이 묵살됐다. 88년에는 천주교사제단의 고소로 검찰이 재조사를 벌였지만 자살의 증거도, 타살의 증거도 없다는 애매모호한 결론뿐이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해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를 묻어둘 수는 없다. 이는 누구를 처벌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지난해 관련법 제정과 함께 의문사진상규명위가 발족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때마침 최 교수 사건에 대해 끈질기게 의혹을 제기해온 그의 동생이 진상규명위에 나가 새로운 증언과 함께 관련자료도 제출했다. 이제 당시 최 교수를 조사했던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이 진실을 말할 차례다. 88년 검찰의 재조사 당시 안기부가 제시한 최 교수의 투신현장 사진 등 의문투성이 자료에 대한 검증작업도 이뤄져야 한다.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은 물론 그 가족의 고통을 우리 사회가 함께 위로하는 일이기도 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해당 기관은 관련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하고 관련자들은 겸허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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