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프 반덴베르크 지음 /박계수 옮김/448쪽/ 9000원/ 한길사
‘파라오의 음모’는 추리 소설이 아니라 한 마리의 독충이다. 나일강 갈대 숲에 은신하다가 사람 피부 깊숙히 파고들어 살점을 잘라내기 전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주혈 흡충류.
책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독벌레의 맹독에 마비되어 이집트 왕들의 계곡을 배회한다. 그곳 어딘가에 누구의 발길도 닿은 적이 없는 임호테프의 무덤이 숨어 있다.
임호테프. 파라오 조세르가 통치했던 시대에 총리와 시의(侍醫)를 겸하며 사카라에 첫 피라미드를 건축했고, 신들의 비밀장부를 들추어 만물의 생명을 내고 거두었던 의술의 천재였다. 신성의 궁극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으며, 나일강을 휘저어 대지를 창조하고 황금 매를 날려 검은 하늘을 지었다. 또 그의 날개 달린 영은 피라미드를 아이들 장난감처럼 집어들었고, 하늘의 빛을 녹여 유리에 담았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신으로 죽은 임호테프의 무덤을 왕의 계곡에 세우고, 세상의 모든 지식과 황금을 쓸어모아 무덤 돌문 뒤에 봉인했다. 고고학자와 도굴꾼들은 돌문이 영원으로 통한다고 생각했다.
저자 반덴베르크는 파라오의 전설을 칭칭 휘감았던 낡은 붕대를 흥미진진한 필체로 풀어낸다. 그의 묵직한 저력은 나일강 푸른 비늘처럼 도처에 빛난다. 바짝 말라버린 전설 하나로 1500만 독자를 사로잡고 인터넷 서평란을 뜨겁게 달구다니 엄청난 필력이다.
소설에는 왕들의 음모 말고도 텅 빈 지하 무덤 속 매캐한 먼지 냄새와 나일강의 게으른 역사가 함께 공존한다. 돌연히 닥치는 모래바람의 채찍소리도 들린다. 문명의 야성(野性)과 야만의 내성(耐性), 흩날리는 영원과 화석화된 현재가 내내 귀밑에서 윙윙거린다. 반덴베르크의 역사 추리는 민물과 짠물이 섞이는 나일강을 헤엄쳐 건너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피라미드의 삼각 그늘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다.
때는 바야흐로 영국 보호령 시대의 이집트. 세기초 제국주의 열강들의 판 가르기가 치열한 물밑 접전을 벌이는 동안 도심 빈민가 뒷골목을 누비는 고고학자들도 발걸음이 분주하다. 빈민가의 지하 통로는 수천 년 도굴꾼의 후예들을 먹여 살린 고대 신왕조 왕실 무덤으로 곧장 이어진다. 옛 음모의 빗장을 푸는 열쇠는 돌판에 새겨진 상형문자들. 여섯 토막으로 흩어진 돌판을 짜 맞추어야 미지수로만 성립된 방정식을 풀 수 있다. 유럽 박물관 으슥한 창고에서 먼지를 맞고 있던 돌판들이 정체 모를 연속사건을 겪으면서 차츰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수수께끼 상형문자의 비밀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한다. 먼저 이집트 지하 애국조직이 황금의 신기루를 뒤쫓기 시작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정보부도 사막 바람에 그을리며 흙삽과 돌 광주리를 챙겨들고 가세했다.
이 책은 결미가 단연 압권이다. 사막의 아들 오마르가 인적 끊긴 콥트 수도원 후미진 밀실에서 오래 전 실종된 고고학자 하트필드와 마주치는 장면이다. 마지막 돌 조각의 비밀을 건네 받는 순간 멤피스의 사제들이 영원의 문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살아 있는 미라의 갈라진 입술에서 임호테프의 찬양이 꿀물처럼 흐른다.
오, 세상의 힘을 싹트게 하는 임호테프여. 그의 육체는 태양신 라처럼 빛난다. 그는 우리에게 빛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며 그의 정신으로 무지의 어둠을 몰아낸다. 깨어나라, 임호테프여.
노성두 (서울대 강사·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