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쉽게 풀어쓴 多夕사상

  • 입력 2001년 3월 9일 19시 11분


한국사회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1890∼1981)와 그의 제자 함석헌(咸錫憲·1901∼1989)의 탄생 111주년 및 100주년(13일)을 앞두고 두 사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발간됐다. ‘다석일지 공부’는 유영모의 유일한 육필 원고를 풀이한 책이고, ‘함석헌 평전’은 함석헌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연구서다.

어제를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산다. 하루를 산다는 말은 통째로 산단 말이요, 하늘을 산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산다. 하나님과 같이 산다. 하루를 불사르고 산다. 나를 불사르고 산다. 나 없이 산다.…”

태어난 지 2만3785번째 날인 1955년 4월26일, 다석은 이런 내용의 글을 적으며 20년 간 지속되는 일지(日誌)를 시작한다. 하루 하루가 이렇게 의미심장하기에 다석은 날짜를 세며 살았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아내와 부부관계도 끊고, 일체 기대지 않기 위해 의자의 등받이도 톱으로 잘라버리고 살았다.

이렇게 일생을 살았던 다석은 새벽이면 일어나 책상 앞에 꿇어앉아 고전을 읽고 명상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지에 적어 왔다. 1955년부터 이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대학노트에 적은 것이 지금 이 책의 원본이 된 ‘다석일지’다.

“영원한 인생은 자기 부정을 통한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가르쳤던 다석의 목소리는 기독교와 동양사상을 넘나들며 삶과 죽음과 영원과 생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의 일지는 잠언과 같아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제자인 김흥호 목사는 다석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이 일지를 현대 한국어로 풀이했다.

올해 82세를 맞는 김 목사는 그 내용이 후학들에게 전해지지 못할 것을 염려해 70대 중반부터 생애 마지막 작업이라 생각하고 이 일에 매달렸다. 꿇어 앉아 200자 원고지 1만2000매에 이르는 이 해설서를 쓰면서 다리가 굳어져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석의 함축적인 언어를 완벽하게 현대 한국어로 옮기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김 목사는 “뗏목 없이는 강을 건널 수 없고 뗏목을 버리지 않고는 육지에 오를 수 없는 것처럼 나의 해설이 하나의 뗏목의 역할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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