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DNA 독트린

  • 입력 2001년 3월 9일 19시 14분


◇DNA 독트린/리처드 르원틴 지음/김동광 옮김/265쪽, 1만원/궁리

인간 게놈에 유전자가 3만∼4만개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국적 연구팀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에 의해 최근 밝혀졌다. 만물의 영장이 벌레나 파리보다 ‘조금’ 더 많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놀라움의 밑바닥에는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비만, 폭력 등 다양한 행동양식이 모두 DNA 속에 내장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집단유전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르원틴 하버드대 교수(73)는 이같은 ‘환원주의’에 대해 ‘인간과 생명현상은 결코 유전자로 환원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대신 “인간이란 종이 나타내는 놀라운 다양성은 유전부호에 영구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르원틴은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를 상정하고 그에 따라 인간 본성과 행동을 설명하는 ‘유전자 결정론’은 위험천만한 사고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바짝 세운다. 인종간의 지능차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우생학이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는 이론적 무기가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유전자 중심주의란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그것은 현재의 사회구조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미국 과학아카데미가 극비 전쟁연구에 연루되는 것을 비판하며 사퇴했던 좌파적 지식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르윈턴의 신랄한 비판은 정확하게는 에드위드 윌슨으로 대표되는 사회생물학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이미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한울·1993)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생물학자들을 이론적으로 논박했던 그는 대중강연을 정리한 이 책에서 평이한 사례와 비유로 자신의 논리를 대중에게 설득한다.

하지만 10년 전 르원틴의 격앙된 어조는 학술적인 면에서 냉정한 독해를 필요로 한다. 사회생물학이 그의 주장처럼 유전자만 추종하고 환경을 내팽개칠 정도로 무지하지 않으며, ‘유전자가 사회를 결정한다’고 망발할 만큼 용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주장의 정당함과는 상관없이, 그에게서는 비판의 대상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맹공격을 퍼붓는 돈키호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참고로, 윌슨은 자서전 ‘자연주의자’(사이언스북스·1996)에서 하버드대 생물학과 건물 아래층 연구실에서 자신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던 르원틴에 대한 애증과 자기 변호를 드러내기도 했다. 원제 ‘Biology as Ideology;The Doctrine of DNA’(1991).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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