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란 무엇인가/심노숭 지음, 김영진 옮김/310쪽, 6000원/ 태학사
◇소리 하나/이철수 글, 그림/189쪽, 1만2000원/문학동네
벗에게.
잘 지내시는지요. 올해는 봄이 몹시도 더디 옵니다.
손바닥만큼 비쳐드는 볕이 반가워, 냉큼 창을 열었다가 느닷없는 모래바람에 아린 눈만 비비고 말았습니다.
이런 날에는, 대책없이 달려드는 적막감에 두 손 들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아득한 기억 속의 어느 날, 마당에서 펄럭이던 이불홑청의 눈부신 흰 빛에 취해 까닭 모를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 그 느낌이 이랬던가요.
갓 도착한 세 권의 책을 집어들고 갈 곳 없는 마음을 달래 봅니다.
이현주 님은 새 책에서 돌 열쇠 꽃 집게 가위…. 온갖 사물과 대화를 나눕니다. 예컨대 이런 식이로군요. 집게를 만나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내 몸에 힘을 써서 무엇을 끼워놓지 않는 한, 나는 언제나 빈 몸일세.”
“그런 상태로 있는 한 너는 쓸모가 없는 물건이야.”
“내가 이런 상태로 있으니까 쓸모가 있는 걸세.”
“…”
“그리고 왜 자네는 생각이 마냥 ‘쓸모’ 쪽으로만 치닫는가?”
“쓸모가 있어서 네가 있는 것 아닌가?”
“자네들이 나를 쓰려고 만들었다면 내가 나의 쓸모에 대해 걱정할 근거는 없는 것 아닌가?”
옳거니! 그렇다면 과연 나의 ‘쓸모’라는 것은 나의 ‘존재 이유’과 같은 값의 이름일까요?
해가 뉘엿, 기울기 전에 ‘!’ 벼락같은 깨우침이 올 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책을 펼쳐봅니다. 제목이 사뭇 심각합니다.
태등 심노숭(泰登 沈魯崇). 조선시대 정조 순조 연간에 살았다 합니다. 서른 즈음에 아내와 딸을 잃어 상심하기가 이를 데 없었답니다.
이 책은, ‘정약(情弱)하기가 마치 아녀자 같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그가, 아내를 먼저 보낸 뒤 갈피마다 펼쳐놓는 회한의 기록입니다.
“지난해 파주에 조그마한 집을 지었다. 아내가 기뻐하며, ‘이제 뜻을 이룬 건가요?’ 했다. 정원과 담장을 배열하고 창문 위치 잡기를 아내와 상의했다. 꽃과 나무를 심으려는데, 아내는 병들고 말았다. 일이 끝날 무렵, 아내는 병이 위독해져 ‘파주 집 옆에 저를 묻어주세요’라고 말해 함께 눈물을 흘렸다. 집이 이사오던 날, 아내는 관에 실린 채 왔다. … 이제부터 죽는 날까지 봄 가을로 나무 심기를 의식으로 삼을 것이다. 살아서는 함께 파주의 집을 얻지 못했지만, 죽어서는 영원히 서로 얻을지니…”
미안합니다. 괜스리 마음 한 자리가 더욱 허전해졌나요.
이철수 님의 책을 열어봅니다. 판화 한 쪽에 짧은 산문 한 쪽 씩, 무척 정다운 책을 냈습니다. 그림마다 둥글둥글합니다. 원(圓)은 무한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일까요.
“오리가 떨어뜨린 깃털은 찾을 수 있을 터이지만,
오리가 날아간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허공이 다시 적적할 뿐,
그 하늘 아래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욕심을 냅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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