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문명이 가속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근대 이후 그 문명을 이루는 것들은 이제 일상적 인간의 앎의 범위를 한참이나 뛰어넘어, 심지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조차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거기에 무관심하다. 단지 ‘사용자’의 위치에 만족해 할 뿐이다.
디지털이라는 말이 세탁기 TV 등에 탑재되어 나날의 영역 밑바닥까지 파종되기 시작한지도 꽤나 됐다. 한데 디지털은 신식이고 아날로그는 구식이라는 정도의 구분법을 넘어 디지털이 우리의 운명을 재조직하고 계도해 일종의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는 현 국면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많지 않다. 자기 삶의 결정적 변수일지도 모르는 것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다만 자기의 안녕을 희망한다.
디지털, 사이버스페이스, 인테넷 등의 용어와 표상으로 요약되는 기술환경과 그에 비롯하는 최근 문명의 의미는 자동차, 비행기 등 ‘복잡한 기계덩어리’의 출현 의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문명의 결정적 분기를 이루기도 하거니와, 따라서 우리의 삶을 이전과는 아예 다른 질과 형태로 비약시킬지도 모르는 스프링보드이다.
하지만 자기 삶을 끌고 가는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것을 새로운 암흑기의 도래 가능성이라 불러도 되는지. 물론 많은 이가 반박한다. 아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함정은 거기에 있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주인이기보다 다만 ‘사용자’에 머물 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문제는 사용자에 그치는 한 사이버스페이스를 영유한 새로운 권력과 억압에 함몰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이다.
‘다행히’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세계는 아직 결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요컨대 지배와 피지배, 권력과 규율 등 과거 인간사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던 메카니즘들이 아직 안착되지 못한 채, 자본주의적 소유권(copy right)과 정보 공유권(copy left)의 대치 등 여러 세력의 각축이 가열 중인 미결정형의 세계라는 말이다.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대목도 그런 측면이다. 아직 충분히 개간되지 않은 사이버스페이스. 그 세계의 성격은 우리가 다만 ‘사용자’로서가 아니라 ‘입법자’로서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결정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핵심적인 전언이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자본의 새로운 식민지가 되고 새로운 ‘디지털 족쇄’의 노예를 양산하는 전자제국이 될지, 아니면 만인을 위한 열린 세계가 될지 그 향방은 엄중하게도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책은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개간자의 자격과 민주적 주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여러 매뉴얼들을 우리에게 공수하고 있는 중이다.
이 성 욱(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