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는 물론 유럽과 일본 등 세계 증권시장은 우려하던 ‘나스닥 폭탄’이 터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나스닥 지수 2,000선이 무너지면 투매심리가 확산돼 전 세계 증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시장이 나스닥의 영향으로 주말에 큰 타격을 받았으며 국내 증시도 12일부터 나스닥 폭락의 영향권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성장주 중심의 코스닥시장이 매물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불안한 것은 이미 월가 전문가들이 지수 지지선을 2,000에서 1,800으로 하향 조정했다는 점이다.
▽나스닥 시장 왜 폭락했나〓지난 주말 나스닥시장 폭락의 ‘주범’은 인텔사의 실적악화 경고공시였다. 반도체의 선도주자인 인텔은 8일 실적발표를 통해 생산라인의 부진으로 1·4분기 매출이 전분기에 비해 25%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주의 잇따른 실적악화 경고는 기술주의 거품론을 몰고 왔다. 미국 기술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아직도 평균 50배에 이른다. 85년 이후 평균치인 25배의 두배나 된다. 그 만큼 주가가 높은 수준에 형성돼 있다는 뜻.
여기에 ‘실업률이 예상보다 낮지 않다’는 미국 노동부의 2월 고용보고서는 ‘인플레 우려가 상존하며 따라서 금리의 대폭 인하 가능성이 낮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인텔악재’로 불붙고 있는 주가하락세에 기름을 끼얹었다. 시장은 20일로 예정된 미국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가 0.75%포인트 정도 내릴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스닥 지수 폭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둔화냐 침체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회복시점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건설 서비스업종이 회복 기미를 보인다지만 제조업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침체와 물가인상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정책당국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드는 대목이다.
▽나스닥 추락세 어디까지 갈까〓어낼리틱스 리서치의 한스 캐스하이어프 사장은 “나스닥 주가는 이미 1년 전에 비해 59% 떨어져 있지만 아직도 200포인트 정도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룬털&Co의 토드 클락 부사장은 한 술 더 떠 “나스닥 지수는 견고한 하락세에 놓여 있으며 1,800선은 지지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목표 지수로 여겨진다”고 주장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MMS의 스트래티지스트 폴 처니는 “현재 미국 증시는 호황일 때와 정반대의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서는 반등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증시분석가들도 2,000선 아래로 추락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대증권 국제영업팀 송영환 차장은 “손절매를 철저히 하는 미국인들의 투자패턴을 감안하면 10% 정도의 추가하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하지만 저점매수세 유입과 추가 금리인하가 지수 2,000의 지지선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증시 바짝 긴장〓증시 전문가들은 연기금으로 떠받쳐지고 있는 국내 증시의 허약한 수급구조가 나스닥 폭락으로 일시에 무너질 가능성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연초 이후 뚜렷한 매도세를 보이지 않았던 외국인과 시장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개인이 물량을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나스닥의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이런 걱정은 더욱 커진다. 대우증권 투자정보팀 조재훈 팀장은 “미국 증시의 침체 이외에도 일본의 경제위기, 현대 자금난 등의 악재를 감안하면 종합주가지수 550∼620의 박스권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바닥권을 형성하려는 시장 의지를 확인한 뒤 저점매수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코스닥 시장의 불안감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SK증권 강현철 연구원은 “성급한 바닥권의 확신은 위험하다”고 전제하고 “뚜렷한 모멘텀이 제공되지 못하는 한 매물대가 집중돼 있는 77∼82선을 단기 박스권 상단부로, 저점을 형성했던 70∼73선을 하단부로 활용하는 매매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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