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 그레이하운드 터미널. 인도에서 취업비자를 받고 실리콘밸리에 들어왔던 캘리(29)는 직장을 잃은 뒤 귀국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면서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나눴다.
캘리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인도 통신장비 제조 공장에서 근무하다 스카우트돼 동료 4명과 함께 이곳에 왔다. 99년 12월부터 새너제이에 있는 라이터 생산 공장에서 일해왔다. 그러나 ‘무서운 구조조정의 폭풍(restructuring storm)’의 희생자가 되면서 쓸쓸히 귀국길에 오르는 신세가 됐다.
실리콘밸리에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미 근로자들의 해고(Lay off)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국 경기가 하강하면서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지난해 4·4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미치고 벤처캐피털(VC)의 투자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생산비 절감을 위해 잇따라 아웃소싱과 인력 감축을 벌이고 있다.
새너제이 지역신문들은 실리콘밸리의 4·4분기 벤처캐피털 투자가 3·4분기의 70% 수준으로 떨어져 근로자들이 체감하는 실업에 대한 우려가 전년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연일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의 간판기업인 휴렛팩커드(HP)의 경우 최고경영자 칼리 피오리나가 앞장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피오리나씨는 HP의 분기 순이익이 예상보다 2억3000만 달러가 모자라자 올 1월 마케팅 분야 직원 1700명을 전격 해고했다. 이어 83개 자율 생산 부서를 소비자판매 기업판매 프린터생산 컴퓨터생산 등 4개 업무 영역으로 묶어 재조정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 개발업체인 오라클도 구조조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구조조정 칼바람은 동부에서 밀려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뉴저지에 본부를 둔 통신장비업체인 루슨트테크놀로지는 올해 1만6000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시카고에 있는 모토로라 본사는 PCS 생산을 아웃소싱하고 전체 인력의 10%에 가까운 1만여명을 감축했다.
실업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실리콘밸리 터줏대감인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고는 없을 것”이라며 임직원들을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근로자들의 불안심리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이 지역의 거주 환경은 다소 나아졌다. 한국 본사에서 파견나온 삼성SDSA 손원태부장은 “인도 등 아시아 지역 출신의 기술자들이 대거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어 집값 거품이 다소 빠지고 교통 사정도 다소 좋아졌다”고 말했다.
<새너제이〓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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