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채권단은 10일 은행회관에서 17개 은행장 회의를 열고 현대전자에 대한 은행권 여신 3000여억원의 만기를 1년간 연장하고 14억5000만달러의 수출환어음(D/A)매입한도와 5억3000만달러의 수입신용장(L/C)한도를 연말까지 보장해주기로 했다.
현대석유화학에 대해서는 신규자금 1150억원을 현대석유화학 SM공장을 담보로 6개월간 지원하고 6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시설관련 대출금을 6개월간 연장해주기로 했다. 현대건설에 대해서는 4억달러의 해외지급보증을 해주기로 재확인했다. 외환·산업은행은 이를 담보로 이미 2억달러의 외화대출을 해주었다.
▽지원배경=현대전자 미주법인(HSA)의 부도위기가 지원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현대전자는 지난 1월 자금운용계획에서 올 5조6700억원의 부채의 만기가 도래하지만 신속인수제로 2조9000억원의 회사채의 차환만 이뤄진다면 △영업이익 2조원 △자산매각 1조원 △신디케이트론 6000억원 등으로 부채상환에 문제가 없다고 장담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은 두달만에 허물어졌다. 반도체 값의 하락으로 영업이익 계획에서 차질이 빚어지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게된 것. 현대전자는 올해 64MD램의 평균가격을 4.5달러로 예상했으나 이미 2월초 4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영업이익에서 구멍이 난 부분을 채권단이 메워달라고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이밖에 현대건설 지원은 이미 발표된 것이며 현대석유화학은 외자유치 및 자율적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자금부족현상이 발생했다는 게 채권단의 설명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우사태에 이어 동아건설 파산과 고려산업개발 부도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위기가 불거질 경우 정부와 채권단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도 이번 결정과정에 작용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이 이달부터 상시퇴출 시스템 을 가동하기로 한지 10여일만에 현대 추가지원에 나섬에 따라 다른 기업의 처리와 관련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회생 가능할까=현대전자의 회생은 전적으로 반도체 가격의 동향과 자구이행에 달려있다. 외환은행 이연수부행장은 현대전자와 외국계 조사기관이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반도체 D램가격은 분기별로 2.60달러∼4.10달러로 예상된다 며 반도체 가격이 예상범위에 머물고 현대전자의 자구계획이 충실이 이행되면 정상화가 가능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반도체 가격 예측이 틀릴 경우 또 다시 유동성 위기가 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메릴린치증권은 9일자 보고서에서 현대전자가 생산을 줄이지 않고 현재처럼 제조원가로 반도체를 계속 판매하는 것은 단지 운명을 연장하는 것일 뿐 이라며 채권단의 출자전환이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 밝혔다.
실제 현대전자 스스로가 출자전환 동의서 제출 의사까지 밝혔다는 점에서 현대전자의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 일부 은행이 D/A한도를 축소해 현대전자 미주법인의 부도위기를 부른 것처럼 채권단이 이번 지원약속을 제대로 지킬 지도 관건이다.
현대건설은 현재 자구이행이 지지부진한 것을 감안하면 자산실사가 끝나는 4월말 채권단의 출자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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