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집단이기 시위' 판친다…차도점거 거리행진

  • 입력 2001년 3월 11일 18시 50분


《인도는 물론 차도까지 점거하는 가두행진, 도심 한복판에서 온종일 계속되는 확성기를 통한 구호와 노래….

현 정부 출범 이후 시위에서 화염병과 최루탄은 많이 사라졌지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식의 집회시위 문화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오히려 이익집단의 집회가 급증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불편과 고통은 아랑곳없이 자기 주장만 펼치는 ‘꼴불견 집회’는 더 늘고 있는 실정이다. ‘품격 있는 시위 문화’의 정착은 불가능한 것일까.》

▽꼴불견 집회〓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는 모회사 노조원 40여명이 “회사가 매각될 때 고용 승계를 보장하라”며 일주일 동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집회 도중 계속해서 스피커 2대를 사용했고 이를 통해 나오는 노래와 구호 때문에 주변 건물의 사무실에서는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한 학원의 관계자는 견디다 못해 “소음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못하겠다”며 경찰에 112 신고를 했다.

역시 지난달 말 종로에서 2시간 동안 거리행진을 벌인 한 시민단체 소속 회원 170여명은 지나치게 큰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며 인도를 막았다. 경찰이 시위대에 “플래카드는 차도쪽에서만 보이게 앞뒤로 들고 인도에서는 2줄로 행진하라”고 요구했지만 시위대는 이를 무시, 행인들에게 큰 불편을 주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 공기업 노조원들이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하면서 시설을 부수고 미사를 방해하며 노상방뇨까지 한 일도 있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관계자나 담당 국장이 나와 시위대에 설명을 해도 무조건 반말로 ‘장관 나오라고 그래’라며 호통을 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대안 및 대책은 없나〓시위의 목적은 자신의 주장을 남에게 널리 효과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폭력이나 소음시위 등 남에게 불편을 주는 집회시위는 오히려 그 효과를 깎아 내린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유행하는 ‘나홀로(1인) 시위’는 시민들의 평가가 좋은 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2인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점에 착안해 참여연대,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 국민행동’ 등 몇몇 시민단체들은 ‘나홀로 시위’를 시도했다.

시민 김승모씨(32)는 “1인 시위를 한 번 봤는데 시민들에게 불편도 주지 않고 오히려 관심도 더 끄는 좋은 시도인 것 같다”고 평했다.

한편 정부도 집회 장소에 대한 제약을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현행 집시법은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대통령관저, 국회의장공관, 대법원장공관, 헌법재판소장공관 등 너무 많은 곳을 집회금지구역으로 정해 놓았다. 미국 등 선진국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국세청 앞에서 2주 동안 ‘나홀로 시위’를 벌인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종훈(尹鍾薰)회계사는 “정부는 필요 이상으로 장소를 규제할 경우 시위대가 거리로 나가 더 과격한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유념하고 시위대도 스스로 품격 있는 집회를 갖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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