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총리가 등장해 대수술에 들어가기까지 영국은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쳤다. 대처리즘의 골자는 재정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 등. 특히 공공부문 개혁이 두드러졌다. 대처는 “민간기업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만 공기업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며 공기업 개혁에 주력했다. 공기업을 과감히 민간에 팔거나 위탁 경영시키고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비인기 정책을 꾸준히 편 결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80년대의 미국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70년대의 영국병을 보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우리 또한 영국이 걷는 길을 뒤따르고 있으니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대로였다.
철강 자동차 등 60년대까지 미국을 이끌어오던 주력산업이 경쟁력을 잃었다. 대기업들은 대규모 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재정지출을 줄이지 못했고 결국 엄청난 쌍둥이 적자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본기업들이 미국내 부동산을 사들이는 수모를 겪으면서 ‘미국혼’이 팔리고 있다는 자성론도 일었다. 미국산업의 경쟁력을 분석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토대로 철저한 구조조정을 하고 나서 90년대에 대호황을 누렸다.
90년대의 일본. 미국을 얕보던 일본은 거품붕괴와 금융부실에 따른 복합불황에 빠져들었다. 거품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차례 경기부양책을 썼지만 경기는 요지부동이었다. 재정적자만 키웠을 뿐이다. 마침내 미국의 신용평가기관들은 세계최대의 채권국인 일본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재정파탄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2000년대의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제2의 영국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제2의 일본이 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제2의 일본도 될 수 없는 것인가.
얼마전 미국계 증권사인 모건 스탠리는 한국경제에 관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제2의 일본이 될 수가 없다”고 경고했다. 2003년경에 다시 경제위기가 재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70년대의 영국, 80년대의 미국, 90년대의 일본이 갖고 있는 증후군을 모두 갖고 있다. 공기업의 비효율, 경쟁력없는 산업, 소비위축과 재정적자 등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어느덧 그것은 ’한국병’이라고 불리고 있다.
우리보다 여건이 나은 나라들도 병을 고치는데 10년 이상 걸렸다. 일본처럼 아직도 못 고치는 나라도 있다. 외국 증권사들은 한국이 이들 국가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병을 쉽게 고치려고 서두르는 건 금물이다. 설익은 대책을 남발하다간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다. 정부는 위기탈출을 너무 장담하지 말자. 그리고 국민들은 정부의 신속한 해결책을 기대하지 말자. 국민들에게 고통을 함께 견뎌내자고 설득하는 정부를 믿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하다.
<박영균 금융부장>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