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업, 학자들 모두 “게놈 연구와 바이오산업이 중요하다”고 말로는 강조하지만 연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진정한 게놈 연구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이 박박사의 평가.
선진국들의 유전체연구는 인간게놈 발표 이후 이제 기초과학 수준을 넘어서 산업화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한국은 기초과학 수준의 접근도 못하고 있다. “이대로 5년이 지나면 추격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 바이오산업의 황무지〓인간게놈연구에 소외된 한국은 98년 일본 주도의 국제컨소시엄에 공동 참여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술력이 워낙 떨어져 전체 프로젝트 진척의 발목을 잡아왔다. 1월 다국적기업인 신젠타사가 벼 게놈지도를 완성했다고 발표하자 다급해진 일본은 미국의 몬산토사와 손잡고 올해안에 벼 염기서열 분석을 마치기로 했다. 한국은 일본의 요청이 있을 때 부분적인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LG화학에서 신약 개발을 하다가 작년말 바이오벤처기업을 세운 크리스탈지노믹스 조중명 사장은 “신약 개발을 위한 기초 시설이 거의 없고 선진국이 개발해 놓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마저 갖추어져 있지 않아 황무지 위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라며 “병사들이 소총도 없이 전쟁터로 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게놈 해석에 필요한 자동염기서열분석기도 미국의 셀레라지노믹스 한 회사가 300대를 갖고 있지만 한국은 전체 연구소와 기업을 통틀어 20대를 갖고 있다.
국내 바이오산업의 열악함은 각종 지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기술 개발비는 1.6억달러(99년 기준)로 미국(79억달러), 유럽(19억달러)에 비해 크게 뒤져 있다. 미국 한 제약기업의 연구비에도 못 미친다. 게놈 연구의 핵심 인력인 유전체연구 관련 박사는 국내를 통틀어 40명, 유전체연구의 속도를 좌우하는 생물정보학 관련 박사는 1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폭발하는 바이오산업〓생물체의 유전자 기능을 밝혀 유전자를 상업적으로 조작하는 바이오산업은 90년대 이후 전세계 시장 규모가 매년 32%씩 성장하고 있다. 3년이면 시장 규모가 배 이상으로 커진다는 의미. 90년 시장 규모가 44억달러였지만 95년에는 238억달러, 작년에는 540억달러를 돌파했으며 2010년경에는 21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오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한 것은 바이오기술이 의약, 화학, 농축산업, 식품, 에너지, 환경산업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기초 기술이기 때문. 특히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생물의 유전자정보를 해독하고 연구하는데 획기적인 길이 열림으로써 바이오기술의 산업화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바이오산업의 고부가가치는 빈혈치료제(EPO)가 1g에 67만달러, 항암보조제는 1g에 54만달러인데서 알 수 있다. ‘산업의 황금’이라고 일컬어지는 256KD램 반도체가 1g당 360달러. 바이오산업은 또 ‘물질특허’를 허용하기 때문에 개발에 성공한 1개 기업이 전체 시장을 장악한다. 후발국이나 후발 기업들이 차지할 영역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 번 처진 기업은 역전하기가 매우 힘든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생물산업협회 김문기부장은 “다른 산업과 달리 바이오산업은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가 바로 산업화되고 특허로 후발주자들의 길을 막아 놓기 때문에 기초과학의 성과 없이는 후발국가 기업이 끼여들 틈새가 별로 없다”며 “정부가 기존의 중화학공업이나 반도체산업 마인드로 접근해서는 바이오산업 육성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병기·정위용기자·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