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日 정치·경제 '동반 추락'…'모리사태'에 주가도 곤두박질

  • 입력 2001년 3월 12일 18시 36분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가 사실상 사의를 표명한 이후 일본 정치와 경제가 더욱 혼란에 빠졌다. 모리 총리는 이르면 다음달 초 물러날 예정이어서 ‘식물총리’ 체제로 인한 혼란은 적어도 한달 가량 이어질 전망이다.

▽‘백약 무효’ 경제〓자민당 등 연립여당이 지난 주말 긴급경제대책을 내놓았지만 12일 열린 도쿄(東京)증시는 개장 직후부터 폭락, 닛케이평균주가가 15년만의 최저치를 경신했다.닛케이주가는 지난 주말보다 456.53엔(3.62%) 떨어진 12,171.37엔으로 마감됐다.

이날 시장에서는 미국 나스닥지수가 2,100선이 무너진데다가 일본 정국과 경제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면서 첨단기술주를 중심으로 크게 주가가 하락했다. 오전에 내각부와 경제재정성이 지난해 10∼12월 국내총생산(GDP)이 전기보다 0.8% 증가했으며 지난해 정부목표인 1.2% 성장 달성도 가능하다는 전망을 발표했지만 주가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또 도쿄외환시장에서는 엔화가치도 크게 떨어져 엔화 환율이 달러당 120엔대로 올라섰다. 오후 5시 현재 엔화환율은 지난주말보다 0.55엔 오른(가치는 하락) 120.40엔.

연초부터 ‘3월 금융위기설’이 확산되자 최근 일본은행이 재할인율을 두 차례나 인하한데 이어 연립여당은 증권관련 세제개편 등 증시와 부동산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긴급대책을 내놓는 등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모리 총리의 사퇴를 둘러싼 정치공백으로 경제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지난 주말 여당이 마련한 긴급대책도 부처와 협의하지 않은 채 서둘러 발표된 것으로 행정부는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차피 개각이 곧 이뤄지고 정책방향이 다시 바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관계자들은 “여당의 긴급대책은 참신한 내용이 거의 없고 모리내각과 여당의 정치력이 떨어진 상황이라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심스럽다”며 주가 하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와 행정 공백〓모리 총리는 지난 주말 연립여당 관계자들에게 사실상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퇴진 시기는 다음달 초나 중순경 자민당 총재선거를 치른 다음으로 예상된다. 그 때까지는 총리 기능이 마비돼 행정공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본 정치사에는 정기국회 개회중 총리가 정치적 위기에 몰려 사의를 표명하고도 예산안을 처리한 다음에 사퇴한 예가 있다. 1957년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89년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94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 등이 그랬다.

모리 총리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예산안과 예산관련 법안을 마무리짓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12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민주당 등 야당측은 “사의를 표명한 총리를 상대로 하는 심의에는 응할 수 없다”며 모리 총리에게 즉각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

외교분야에서도 있으나 마나한 ‘식물총리’ 취급을 받고 있다. 모리 총리는 19일 미국과, 25일에는 러시아와 각각 정상회담을 갖는다. 그러나 일본 내부뿐만 아니라 상대측 국가에서도 이미 정치 지도력을 상실한 모리 총리와의 회담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 회의감을 표시하고 있다.

정치권은 민생보다 후임 총리에 온통 정신이 쏠려있다. 차기총리 추대 움직임은 13일 자민당 전당대회에서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9월로 예정됐던 총재선거를 다음 달로 앞당겨 실시한 다음 총리로 추대하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 자민당 지도부가 모리 총리의 조기퇴진을 이유로 당원을 제외한 약식 총재선거를 추진하자 일부에서 이를 반대하는 등 당총재 선출방법과 차기 총리추대를 둘러싸고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한편 모리 총리는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언론매체에서 보도한 ‘사실상 사의표명’ 내용을 “와전된 것”이라며 부인했다. 가뜩이나 인기가 없는 터에 사의 표명 문제로 더욱 정국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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