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 서울지방본부 노조대의원들은 8일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고 노조를 탄압하는 김대중 정권에 결사 반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김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쳤다. 한통노조 대의원들이 구조조정에 반대하면서 대통령 퇴진 요구까지 외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위기 이후 한국통신에서는 1만5000명 이상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고 현재도 분사 아웃소싱 민영화 등을 목표로 구조조정이 계속돼 조합원들이 신분상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이익 보호를 존립 목적으로 삼는 노동조합이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 정도의 결의문이나 구호는 공기업 노조 집회장에서 흔히 터져 나온다.
강북본부장이 노조 대의원들의 결의 내용이나 구호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노조 대의원들이 정보통신부 사무실에 몰려가거나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한국통신은 물의가 일자 대의원 총회장소로 정보통신부가 함께 쓰는 광화문사옥의 강당을 내준 것에 대해 조직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 해당 간부를 인사조치했다고 밝혔다. 한국통신은 조직의 질서유지를 위한 인사권 발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전후사정에 비추어 정통부가 개입한 의혹이 짙다. 노조 대의원 총회가 열린 직후 정통부가 ‘정부 청사에서 반정부 구호를 외칠 수 있느냐’며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한국통신 임직원들이 줄줄이 불려가 혼쭐이 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정통부는 한국통신 광화문사옥의 11∼14층을 쓰고 있고 노조 집회는 15층에서 열렸다. 15층 강당은 한국통신 소유다. 세 들어 사는 처지의 정통부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한국통신 노조는 과거에도 같은 장소에서 노조관련 회의가 자주 열렸는데 이번에는 DJ 퇴진 구호가 감독부처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통부와 한국통신의 의사결정 구조와 분위기가 민주화 시대에 맞지 않게 경직돼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안병엽(安炳燁) 정보통신부 장관과 이상철(李相哲) 한국통신 사장은 이러한 인사가 대통령을 바르게 보필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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