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한미정상회담 결과가 알려진 뒤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문제와 미국의 인권보고서 등에 대해 간헐적으로 비난해 왔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정면으로 거론하며 비판한 것은 처음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이날 한시간동안 무려 6차례나 대미비난 방송을 내보내는 이례적 조치를 취했고, 그 내용도 국가미사일방어(NMD)체계와 일본과의 군사동맹강화 등 부시행정부가 추진중인 정책들을 조목조목 비판한 것이어서 당분간 북-미관계는 경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이날 평양방송의 대미비난은 지난달 21일의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와도 크게 대비된다. 당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과 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대한 파기를 거론했지만 이는 위협적 성격보다는 미국의 대북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9일부터 14일까지 그동안 쓰지 않았던 '미제'라는 표현을 무려 40회나 사용하면서 미국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탈북자출신인 조명철(趙明哲)대외경제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표시했지만 북한은 그 이상으로 대미 불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며 "미국이 북한을 궁극적으로 붕괴시키려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정에 대한 위협을 크게 느낄수록 반발은 거세지고 북-미간 대화나 관계개선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북측의 대미비난이 북-미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는 아니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13일 중앙TV가 "미국의 보수세력들을 지칭해 북한과 세계 각국이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는 만큼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라"고 주장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현 북미관계를 '꽃샘추위'라고 표현한 정세현(丁世鉉)전 통일부차관은 "미국이 북한의 변화의지를 시험하고 있듯 북한도 미국을 탐색하고 있는 과정"이라며 "정부의 중재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