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정치의 냄새

  • 입력 2001년 3월 14일 18시 22분


정치 냄새는 별로 상쾌한 게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란 일그러진 이미지다. ‘정치란 사리사욕을 위해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악마의 사전’ 저자 비어스의 말이다. 영국의 디즈레일리는 “정치와 같은 도박은 없다”고 했다. 독일의 막스 베버는 “정치에 있어서 결정적인 수단은 폭력이다”고 섬뜩하게 말한다. 프랑스 혁명기에 의회는 ‘지위를 얻기 위해 양심을 물물교환하는 장터’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미국 정치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미국 의회란 법을 짓밟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20세기 초에 나온 독설이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미국에서 태어났음이 분명한 범죄계급은 의회밖에 없다. 통계에 비추어볼 때…”라고 개탄했다. 일본 총리를 지낸 요시다 시게루는 국회를 ‘동물원’이라고 하고, 의원을 ‘원숭이 산의 원숭이들’이라고 이죽거렸다. 작고한 일본의 칼럼니스트는 “꽉 막힌 나라에 ‘정치 연기자’만 설친다”고 탄식한 적도 있다.

▷선진국 의회에서도 멱살잡이가 예사이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개를 의사당에 끌고 가서 복수하는 자도 있었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가서 상대 의원에게 휘두른 역사도 있다. 이런 민주주의 역사를 답습하는 것인가. 우리 국회의원들의 폭언과 폭행, 그리고 정쟁도 숱한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 분노를 ‘인분 우편’으로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주 몇몇 의원 사무실에 우편물이 전해지더니 이번 주엔 아예 의원 273명 모두에게 발송되었다.

▷‘국민의 여망은 안중에 없으니 허탈하다. 국민의 대변(大便)으로 국민을 대변(代辯)하여…’라는 질책이라나. 한강에 빠지면 강물이 오염될까봐 정치인부터 건져준다는 우스개만큼이나 씁쓸하다. 그러나 정치인만 매질한다고 될 일일까. 273명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한결같이 이 땅의 유권자들이 뽑아주었다. 오늘의 유럽, 미국의 나아진 정치는 바로 그 유권자들의 수준인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나와 이웃이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자질, 정치의 품질인 것이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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