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노승진/영화나 음악처럼 그림 즐기자

  • 입력 2001년 3월 14일 18시 29분


우리나라에 상업화랑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였다. 70년대 말에는 한국화 위주로 활발한 거래가 이뤄졌으나 80년대 오일쇼크의 타격으로 미술시장도 침체됐다. 그러다 80년대 중반 3저 현상에 힘입은 경기 호조와 현대식 건물 위주의 주거형태 변화로 새 주택에 맞는 그림을 찾는 고객이 늘었다. 이후 서양화가 붐을 이뤘고 88 서울올림픽 때 정점에 이르게됐다.

▼화랑 변해야 미술시장 살아나▼

그러나 90년대 경기하락과 함께 서서히 불황에 접어들어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에는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었다.

미술시장이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와 연관돼 있다지만 이렇게까지 초토화된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미술 수요층이 얇고 작품을 수용할 미술관도 절대 부족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또다른 이유는 일반인들이 미술품을 사치와 투기의 대상으로 생각할 뿐,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활동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미술시장이 보다 활성화 되고 화단이 구조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미술품 유통의 주체인 화랑이 변해야 한다. 기존의 몇 안되는 인기작가를 안면있는 컬렉터들에게 권유해 판매이익을 챙기던 시대는 지났다. 각 화랑이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투자해 각 화랑의 고유한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쟁력 있고 성격이 분명한 화랑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존 컬렉터들은 수도 적고 이미 어느 정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이들을 상대로 한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화랑은 한정된 컬렉터들을 붙잡으려고 서로 아웅다웅하던 구태를 벗어나 미술 애호가와 구매자의 층을 넓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장을 개척하는 차원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에게 미술을 통해 미적인 쾌락과 무한한 상상과 사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아울러 작가는 의식이 깃든 좋은 작품을 제공해야 한다. 소위 팔리는 스타일에 안주해 자기 그림을 자기가 베끼는 식의 작품생산과 크기에 따라 가격을 정하는 호당 가격제는 지금 같이 가격 거품이 걷히고 컬렉터들의 식견이 전문가 수준에 이른 시대에는 결코 통용될 수 없다.

평론가는 작가를 견제하고 한편으로는 독려하여 보다 좋은 작품이 나오도록 도와주고 일반인들에게는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거부감 없이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소유자인 컬렉터들은 스스로의 안목과 미술품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미술품을 투자의 대상으로만 인식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그림을 구입할 때에는 훗날 높은 가치로 평가되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겠지만 구입가격 이하로 가치가 하락되는 상황은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IMF사태 이전까지는 한번 오른 작품가격은 다시 내려가지 않는, 시장원리와 무관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가격체계가 유지돼 왔다.

컬렉터들은 미술작품을 경제적인 가치 이전의 미적인 가치를 스스로 발견할 때 비로소 구입해야 한다. 우리나라 그림값이 지나치게 비싸서 일반인들은 아예 엄두도 낼 수 없다는 생각은 ‘그림〓돈’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부자가 아니라도 영화 한편 보기를 망설이거나 좋아하는 노래의 CD 한 장 사기 위해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미술은 가진 자의 몫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미술계는 일반인들의 이같은 편견을 없애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투자의 눈으로만 보지말길▼

미술계 전체가 합심해 미술이 생활 속의 문화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일반인들이 미술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화랑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대부분의 화랑은 관람료가 없기 때문에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고 이런 과정에서 좋은 작품을 적절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다. 언제든 가벼운 발걸음으로 화랑에 들어서 보자.

노승진(노화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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