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환영받지 못한 ‘승소’

  • 입력 2001년 3월 14일 18시 29분


주택할부금융사들이 고객들과 약속한 금리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난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올린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결(14일자 A29면 보도)에 대한 YMCA시민중계실 서연경 팀장의 반응.

“이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목마르게 기다리다 지친 피해자들은회사측에 질질 끌려 다니다 대부분 손해를 보거나 권리를 포기한 뒤인 걸요.”

YMCA시민중계실은 할부금융사에 피해를 본 사람들의 소송을 대신 수행해 준 단체. 기뻐해야 할 ‘승소’라는 소식에도 그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할부금융사들이 금리를 인상한 것은 97년 12월∼98년 4월. 당시 피해자는 10만2000여 가구였다. 그 뒤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극심하던 경제난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지금은 금리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법과 법원을 믿고 있다가는 아무 것도 안될 것 같다”고 말하는 서 팀장의 풀죽은 목소리에는 우리 법원과 사법시스템에 대한 강한 불만이 섞여 있었다.

확정 판결이 늦어진 이유도 가관이다. 대법원은 99년 말부터 유사한 상고사건들을 접수받고도 ‘소액 사건’이라는 이유로 내용을 들여다보기조차 않았다. 우리 법은 소가(訴價) 20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판례에 어긋나지 않는 한 심리 없이 2심판결 내용을 그대로 확정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 이른바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 제도’이다.

그 때문에 대법원에서는 피해자와 할부금융사가 이긴 판결이 동시에 나오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에는 “비록 소액사건이라도 사안이 중대하고 많은 국민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건은 대법원이 직접 판단을 내려줘야 하고 그것도 가급적 빨리 선고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법원의 판단이 존중받는 이유는 국민의 법률생활에 기준을 제시하는 ‘심판자’이기 때문이다. 경기가 다 끝난 뒤 부는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신석호<사회부>ky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