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중국 인터넷의 익명 기객(棋客) '용비호' 신드롬

  • 입력 2001년 3월 14일 18시 49분


지난해 10월3일. 중국의 강자 뤄시허(羅洗河) 8단과 ‘용비호(龍飛虎)’라는 아이디를 쓰는 익명의 기객(棋客)이 중국 인터넷 바둑 사이트인 청풍 네오스톤에서 대국을 벌이고 있었다. 치수는 예외적으로 호선. 30초 초읽기 1번으로 두는 초속기였다. 용비호는 당시 100승 2패를 기록하며 청풍에서 아마 9단을 인정받고 있어 청풍의 지도사범인 뤄 8단이 나선 것.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두던 뤄시허 8단은 무려 4연패를 당하는 치욕을 맛봤다. 당시 이 소문은 인터넷을 타고 중국 바둑계에 쫙 퍼졌다.

이후 중국 바둑계에는 ‘도대체 용비호가 누구냐’는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뤄 8단에게 연속 4판을 이길 정도면 정상급 프로기사임에 틀림없지만 중국의 프로기사들은 ‘나는 아니다’며 모두 부인하고 있는 것.

중국체육보 등 중국의 유력 일간지와 잡지는 용비호 소식을 앞다투어 실었으며 지난해말 뤄 8단과 용비호가 재대결한 기보(용비호의 반집승)를 게재하기도 했다. 또 중국 CCTV는 지난달 용비호의 정체를 추적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용비호와 바둑을 둬 1승 1패를 기록한 목진석 5단은 “전투에 능하고 매우 뻑뻑한 바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보통 프로기사가 아니라 정상급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용비호의 정체가 오리무중에 빠지자 일부에선 청풍 소속 중국 프로기사들이 사이트 광고를 위해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 용비호 신드롬 이후 청풍 동시접속자 수가 1000명에서 2500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용비호는 1월말 이후 인터넷 상에서 다시 등장하지 않고 있지만 그에 대한 중국 바둑팬들의 관심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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