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에 따르면 문제는 예산이다. 총 건립 비용이 최소 6000억원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현재의 재정 형편으로는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사박물관 건립은 오래 전부터 과학계에서 주장해온 것이어서 건립이 지연되는 데는 정부의 무관심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연사박물관은 5000여개가 있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나라다. 우리와 경제 규모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나라들도 각기 여러 개의 자연사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도 자연사박물관이란 명칭을 쓴 시설이 있긴 하지만 세계에 공인받은 곳은 아직 없다.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을 구성하는 생물 광물과 화석 표본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미국 워싱턴 DC의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수십m나 되는 거대한 공룡의 뼈가 박물관 한가운데에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최고의 흥행영화 ‘쥬라기 공원’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어릴적 이 같은 공룡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 제작을 꿈꾸었을 것이다.
한반도는 ‘금수강산’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생물종을 보유하고 있고 광물 분포 역시 폭이 매우 넓다. 그러나 환경 파괴와 외래종 유입 등으로 기존 생물종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고유종들을 파악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자연사박물관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동아일보가 이번 주 연재한 심층리포트 ‘바이오 시대, 한국의 자리는…’은 우리 바이오기술이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충격적이다.
바이오산업의 핵심은 유전자기술이다. 각 국의 자연사박물관은 많게는 수억종까지 생물 표본을 보유하고 있다. 이 표본 하나하나는 모두 유전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각 국이 표본 수집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에게 자연사박물관 같은 기본적인 시설이 없는 것은 21세기 국력을 좌우한다는 바이오 경쟁에서도 치명적인 결함이다.
자연사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곧 과학에 대한 국가적인 비전이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자연사박물관은 국민 모두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조선조말 우리 선조들이 외세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과학의 힘’에서 밀린 결과다. 당시 세계의 판도가 무력에 좌우되었다면 이제는 첨단 과학기술에 의해 결정되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과학이 앞선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우리가 조선조때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고 지금부터라도 근본적인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자연사박물관 건립은 그 첫걸음이다.
홍찬식<문화부장>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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