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추진해온 ‘공기업 30대그룹 지정’ 방침을 전면 유보한다고 15일 밝혔다.
‘공기업도 민간기업처럼 문어발 확장을 막겠다’는 공정위 추진계획이 갑자기 유야무야된 것이다. 기획예산처가 공기업 자회사를 정리하는 방안을 이달 초 발표하면서 선수(先手)를 치는 바람에 이같이 번복한 것으로 분석된다.
▽공정위의 유보 배경〓공정위는 그동안 민간부문과 경쟁관계에 있는 정부투자기관인 공기업에 대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는 방침이었다. 공기업도 민간기업과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도록 하고 공기업의 부당내부거래 행위에 대해 재벌과 마찬가지로 쐐기를 박겠다는 것. 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위원장은 “이 제도가 도입되면 앞으로 공기업도 민간기업처럼 경쟁력이 없으면 자연 도태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실제로 몸집이 큰 한전과 대한주택공사에 대해 30대그룹에 넣어 갖가지 규제망을 칠 준비를 했다.
공정위의 이런 방침은 기획예산처가 이달 초 공기업 자회사 41개 중 36개를 민영화하거나 통폐합한다는 정리방안과 정면으로 마찰을 빚게 됐다. 기획예산처는 공공성 때문에 부득이하게 남아 있어야 할 5개사를 제외하고 모두 민영화하거나 통폐합한다는 방침을 이달 2일 발표했다.
▽자회사 정리하면 대기업집단 지정 곤란〓김경섭(金敬燮)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장은 “공정위가 공기업을 30대그룹으로 지정한다는 개혁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자회사를 정리하면 자동적으로 기업집단이 이뤄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한쪽에서 자회사를 정리하는데 다른 쪽에선 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는 것은 서로 모순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회사 정리가 정부계획대로 잘 이뤄질까 하는 부분. 공정위 정책국 관계자는 “자회사 정리상황을 봐가면서 내년에 다시 30대그룹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4대부문 중 가장 개혁실적이 미진한 공공부문 개혁을 강하게 주문하자 부처간에 조율되지 않은 정책들이 발표된 것으로 지적된다.
▽내부거래공시 30대 그룹으로 확대〓공정위가 15일 발표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를 해야 하는 대상이 현행 10대 그룹에서 30대 그룹으로 대폭 늘어난다. 그만큼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는 것.
또 30대 그룹 계열사 범위에 파산법에 따라 파산절차가 진행중인 회사를 제외해 기업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부당공동행위를 신고하거나 공정위 조사에 협조한 사람에게는 과징금을 깎아줄 수 있도록 한 것을 반드시 감면하도록 의무조항을 두었다.이밖에 공정거래법 적용을 받는 지주회사의 최저 자산총액 기준을 100억원 이상에서 300억원 이상으로 올려 기업부담을 줄였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