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웹통합미들웨어 개발 박대연 KAIST교수

  • 입력 2001년 3월 15일 18시 46분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비결’이라고 할만한 것 한가지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집중’하는 것이다.” ‘지식의 르네상스인’으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얘기다. 이 말마따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대연(朴大演·45)교수는 ‘집중의 화신’이라 함직하다. 명절도 없고 주말도 없다. 그저 연구만 한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하루 한시간씩 테니스를 하는 것도, 몸을 튼튼하게 해서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결혼도 안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세계최초의 웹통합미들웨어 웹인원(WebInOne)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웹서버 웹투비(WebToB)를 개발했고, 그가 차린 벤처기업 티맥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들웨어의 전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1월엔 일본 NTT그룹의 자회사인 NTT컴웨어가 티맥스제품을 일본에 팔겠다며 기술제휴를 맺었고, 여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할 계획이다.

컴맹에 가까운 기자가 미들웨어가 뭔지, 웹서버가 뭔지 이해하기는 불가능했다. 웹투비로 말하자면 현재 세계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웹서버 아파치보다 서비스 처리속도는 4배 빠르고 이용자수는 10배이상 늘릴 수 있다는 데서 그 ‘파워’를 짐작할 뿐이다. KAIST의 이광형교수는 “미국이 독점하고 있고, 일본도 엄두를 못내고, 다른 나라는 감히 생각도 못하는 기술을 박교수가 개발했다고 보면 된다”고 명쾌하게 정리해주었다.

“내가 아파 일을 못하면 국가적으로 10을 손해본다고 치자. 박교수는 아프면 100이 손해인 사람이다. 그래서 교수들은 혹시라도 그가 안보이면 걱정을 한다. 혼자 자다가 어디가 아파 못나오는 것이 아닌가 해서….”

이런 설명을 듣고 박교수를 만나기 전 기자는 날카로운 눈빛의 과학자, 또는 아인시타인처럼 폭탄맞은 듯한 머리에 엉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재의 모습을 상상했다. 잠실종합경기장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티맥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교수는 그러나 키작고 순박한 농촌총각 같았다. 그는 “시골뜨기 맞다”고 했다. 웃음이 참 밝았다.

그의 ‘업적’보다 기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모진 가난을 딛고 일어선 삶의 이력이었다. 그는 전남 담양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엄청난 부잣집이었지만 삼촌이 벌이던 일이 제대로 안돼 집안이 풍비박산난 후 집안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온식구가 굶어죽을 수 밖에 없어 낳은지 얼마안된 막내동생을 눈물을 뿌리며 남의 집에 주었을 만큼.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운수회사에 사환으로 취직했다. 월급 3000원. 사춘기고 뭐고 없었다. 생존이 중요했으므로. 바지런하고 똑똑한 소년 박대연은 그 돈으로 식구들 먹여살리며 광주 동성중 야간부와 광주상고 야간부를 다녔다.

당시 상고생 사이에 최고 인기직장은 은행이었다. 전교 1등을 하면 학교장 추천서를 받아 무시험으로 은행에 취직할 수 있었다. 졸업 6개월을 남기고 5년 간 다니던 사환일을 그만두고 공부만 팠다. 드디어 1등으로 졸업해 들어간 직장이 한일은행(지금의 한빛은행)이다. 여기서 번 돈으로 동생들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다 보냈다.

“동생 장가보내느라고 3000만원 넘게 빚을 지기도 했어요. 한달 이자만 100만원이 넘었죠. 동생들은 아무도 몰라요. 형한테 얘기만 하면 돈이 나오니까 형이 힘든 것도 몰랐다고 해요.”

자기 인생도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동생들 뒷바라지만 하느라 얼마나 속이 탔느냐고 묻자 그는 아니라고 했다. “속이 왜 타요? 해보면 알겠지만 남을 돕는다는 게 굉장히 기쁜 일이예요. 아니 남도 돕는데 왜 동생들한테 못해주겠어요. 오히려 내가 동생들에게 고마워해야지요. 나한테 그만큼 기쁨을 줬으니까.”

은행원 생활에서 그는 컴퓨터에 재미를 붙였다. 남들이 프로그램 1개도 못짜는 시간에 그는 30개도 넘게 짤 수 있었다. 남들이 못고치는 컴퓨터 시스템고장도 그는 뚝딱 잘도 고쳤다.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신도 났다.

온라인 고객이 한꺼번에 몰릴 때 은행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 보고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왜 없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가 98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개발한 시스템 소프트웨어 TP모니터가 바로 그 고민의 산물이었다.

사실 유학도 가려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 빚을 더 내서라도 동생들 유학까지 보내고 싶었는데 다들 안가겠다고 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 늦었다는 생각은 안했다. 이제라도 공부를 해본다는 즐거움이 얼마나 클 것이냐. 이제 어차피 혼자 몸인데 돈을 벌면 무얼할 것이며, 모은들 무얼하겠느냐 싶어 1300만원을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던 그가 가방메고 랄랄라 캠퍼스를 누빌라치면 온 세상이 내 것같았다.

그런데 가자마자 탈장 진단을 받았다. 몇달을 참다 방학하자마자 수술을 하기로 하고 날짜를 잡았다. 막상 수술날이 되자 괜찮은 것 같았다. 살았다 싶었는데 섣달그믐날밤 방안을 데굴데굴 구르다 응급실로 실려갔다. 1월1일 수술을 했다. 내일이 개학. 그는 ‘죽어도 병원탓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피로 물든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이튿날 퇴원해 강의실로 갔다.

“내가 가진 돈이 딱 1년3개월 버틸수 있는 돈이었거든요. 학부를 1년3개월 안에 마쳐야 되는데 하루라도 빠질 수는 없었죠. 또 입원비도 없고. 그 일을 겪고 나니까 다음일은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힘든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지도교수도 1년3개월 안에 학부를 마친 전례가 없다며 “당신같이 미친사람은 처음봤다”고 했지만 결국 그는 해냈다. 그것도 ‘ALL A’로. 96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KAIST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학교에서 박교수는 ‘맛이 간 교수’로 통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에 그는 관심조차 없다. 아침 5시반에 일어나 6시에 연구실에 출근하고, 하루 세끼를 학교식당에서 2500원짜리 백반으로 해결한다. 일에 방해될까봐 전화도 거의 안받는다. 오후5시부터 한시간쯤 테니스를 치는 것도 몸을 가뿐하게 해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밤10시에 교수아파트로 퇴근. 머리 속이 온통 프로그램으로 가득차 있으므로 TV로 머리를 식히다 11시쯤 잠든다. 장남이지만 제사도 동생이 지낸다. 어머니에게 “아들하나는 나라에 바쳤다고 생각하시라”고 일찌감치 말해둔 터다. 연애? 물론 안한다.

"선을 본 적도 있었죠. 그런데 만나고 돌아오면 금방 잊어버려요. 며칠 있다가 여자한테 전화가 오기도 하는데, 그 놈의 전화는 왜 꼭 바쁠 때만 오는지. 조금 있다 내가 전화하겠다고 해놓고 또 깜깜이에요. 그러다보면 끝이지요 뭐.”

결혼, 가족, 아이들, 식도락, 취미생활, 돈쓰는 재미…. 수백억원대의 재산가가 됐으면서 왜 그런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자를 답답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런 것도 즐겁겠지요. 하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일하는게 좋아요. 남들은 집에 오면 외롭지 않느냐고 하는데 나는 이해가 안돼요. 뭐가 외로워요. 그냥 자면 되지.나한테는 이게 즐거움이예요. 왜 욕심이 없느냐고들 하는데,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것이 내 욕심이죠. 그게 다 나름대로 사는 방법이지, 남들처럼 안산다고 이상한 건가요?”

그는 성공비결을 ‘혼을 바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인생이 뭐냐, 사람사는 낙이 뭐냐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않는다. 어차피 결론도 안나는 것. 그때그때 눈앞에 닥친 일에만 혼신의 힘을 다한다. 어려서는 먹고 살기, 그 다음엔 동생들 뒷바라지하기, 그리고 나선 공부와 연구. 연구재미에 빠져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고 나니까 이제는 나라를 위해서라도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KAIST 교수 창업1호로 벤처기업 티맥스를 차리고 이듬해 TP모니터 개발신고식을 했다.판로를 뚫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빛은행에 들여보내기 위해 그는 납품담당자에게 무릎까지 꿇었다. 은행에 근무할 때 그의 상관이었던 담당자가 “야간상고 나와서 은행다니던 사람이 무슨 수로 엄청난 제품을 개발하겠느냐. 내 앞에 무릎이라도 꿇으면 고려해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99년 매출 1억원이었던 티맥스는 지난해 53억원, 올해는 500억원 이상을 예상하고 있다. 티맥스 직원들은 “우리 제품 한 카피 팔아서 벌어들이는 외화가 소나타 20만대 팔아서 얻는 수익과 맞먹는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들이 유일하게 걱정하는 게 있다면 박교수가 혹시나 ‘미인계’에 빠져 딴데 정신을 쏟는 거다. 이 말을 듣던 박교수가 말했다. “별 걱정을 다 하네. 나는 소프트웨어에 미쳤던 사람이라고 묘비에 기록되면 그걸로 만?렷?사람이야.”

△웹통합미들웨어란?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사용되는 정보공유용 하드웨어(컴퓨터)를 서버라고 부른다. 웹서버란 다수 이용자가 동시에 접속하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서버다. 티맥스에서 개발한 웹서버 웹투비 등은 세계최초로 웹환경에서 트랜젝션(데이터전송 등)처리 기능을 지니고 있다. 프로그램 사이에서 매개역할을 하거나 연합시키는 역할을 하는 시스템소프트웨어인 미들웨어군(群)에는 TP모니터군과 웹서버군, 웹어플리케이션서버군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을 통합한 것을 웹통합미들웨어라고 한다. 웹통합미들웨어를 갖춘 곳은 티맥스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만난사람=김순덕차장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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