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동아마라톤은 한국마라톤의 축소판

  • 입력 2001년 3월 16일 18시 38분


‘동아마라톤은 한국 마라톤의 축소판.’

동아마라톤 역사를 보면 한국 마라톤이 달려온 길을 알 수 있다. 올해로 72회째를 맞는 동아마라톤이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은 1931년 3월21일. 광화문에서 영등포간을 왕복하는 14마일(약 22.530㎞)구간에서 벌어진 이 대회는 지금으로 말하면 하프마라톤대회. 하지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동아마라톤은 출발부터 대성(大成)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2회대회 2위에 이어 3회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손기정이 동아마라톤에서 얻은 자신감과 기량으로 3년 뒤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쓴 것.

☞ 한국 마라톤 최고기록 변천사
☞ 동아마라톤 역대 우승자

그러나 일제 말기 암흑기와 6·25는 동아마라톤의 질주를 막았고 이는 곧 한국마라톤의 침체로 이어졌다. 1935년 손기정이 세운 한국최고기록이 22년이 흐른 1957년이 돼서야 깨졌던 것도 바로 이 때문.

동아마라톤이 새로운 도약을 하며 한국마라톤에 다시 힘을 불어넣은 때는 35회 대회가 벌어진 1964년. 이때부터 동아마라톤은 광화문을 출발점으로 경인가도를 달리는 42.195㎞의 풀코스를 채택함으로써 한국마라톤을 본격적인 기록경쟁으로 이끌었다. 이어 82년 53회대회부터는 40명의 외국선수를 초청해 기록경쟁에 가속도를 붙이게 했다. 64년 이후 19번의 한국최고기록 중 절반이 넘는 10개의 기록이 동아마라톤에서 이뤄진 것은 바로 동아마라톤의 이 같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동아마라톤을 보면 한국 마라톤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동아마라톤의 상위 입상자들이 곧 한국 마라톤을 짊어지고 갈 기대주들이기 때문이다. 손기정이 그랬듯이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몬주익 영웅’ 황영조도 91년 62회대회에서 1, 2위에 단 1초차로 뒤지며 3위에 올라 세계제패를 위한 힘을 얻었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이봉주 역시 95년 66회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1년 뒤에 있을 ‘쾌거’를 위한 영양분을 듬뿍 제공받았다.

한때 가시권안에 들어왔던 세계최고기록과 한국기록과의 간격은 어느새 1분38초차로 벌어졌다. 이봉주가 지난해 세운 한국최고기록 2시간7분20초는 1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시드니올림픽에서 맥없이 무너져 버린 한국 마라톤은 지금 다시 세계최고기록 사냥에 나설 힘과 함께 새로운 차세대 주자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올해 동아마라톤을 지켜봐야 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현두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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