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베사메무쵸>전광렬 "촬영장서 죽을 각오"

  • 입력 2001년 3월 18일 18시 31분


드라마 ‘허준’에서 혼신의 연기를 보여줬던 탤런트 전광렬(39)이 강제규필름의 영화 ‘베사메무쵸’를 통해 영화배우로 변신한다. 오랜 무명배우 생활 끝에 지난 연말 MBC 연기대상을 수상해 최고의 TV스타로 올라선 전광렬이 꿈꾸는 영화인생은 어떤 것일까. 모든 배역에서 ‘인생을 걸고 연기한다’는 그의 연기관, 인생관을 들어봤다.

[키스해주세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전광렬은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베사메무쵸’(스페인어로 ‘키스해주세요’ 라는 뜻) 촬영에 바빴다. 열달간의 휴식(?)뒤여서일까. ‘허준’에서 무쇠체력을 과시했던 그도 감기 기운으로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첫 영화 출연이다 보니 밤에 잠을 못이룰 정도로 긴장이 많이 되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자신감이 생겼어요. 10개월동안 아무도 안만나고 이것만 파고들었는데 두려울 게 뭐있겠습니까.”

‘허준’이 끝난 뒤 그에게 들어온 시나리오만 45편가량. 그가 시나리오 분석과 고민 끝에 고른 작품이 ‘베사메무쵸’다.

“왜 이 작품을 골랐냐구요? 강제규필름에 대한 신뢰도, 처음 본 순간 제 자신이 세 번 정도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탄탄한 시나리오, 거기에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이미숙이란 배우가 있으니까요.”

‘베사메무쵸’는 증권회사에서 실직당해 하루 아침에 빚더미에 앉은 남편 철수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옛 사랑에게 몸까지 팔아야하는 아내 영희의 절박한 가족 이야기다.

[인생을 건다]

영화속 철수처럼 그도 10년전쯤 사업에 손을 댔다가 빚더미에 앉아 ‘담배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궁핍했던 적이 있다. 그때 든 생각이 ‘연기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내 가족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그는 우선 곤지암 산속에 들어가 5개월간 수염도 자르지 않은채 면벽수도한 뒤 ‘난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하산했다. 수염을 깍자마자 MBC 최종수 드라마국장을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80년 언론 통폐합때 사라진 TBC 탤런트 공채 마지막 기수로서 자존심을 버리고 거금(?)을 썼다.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배우로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사정했다.

최국장은 그런 그를 한참 보더니 “눈빛이 살아있구먼”이란 말과 함께 최진실 김희애 정보석 등 기라성같은 스타들과 함께 ‘폭풍의 계절’에 출연시켰다. 이는 ‘종합병원’과 ‘애드버킷’ ‘청춘의 덫’으로 이어졌고 ‘허준’에서 폭발했다.

“제가 가끔 ‘인생을 건다’는 표현을 쓰면 사람들이 웃는데 제겐 정말 진지한 문제에요. 자기최면의 일종일지라도 저는 작품에 임할 때 촬영장소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깡통을 아시나요]

젊은 시절 그는 한가지에 몰두하면 주변 일은 깡그리 잊어버리는 괴짜였다. 고등학교시절 별명은 ‘깡통’. 등교시간엔 학교에 안가고 엉뚱한 데 가서 도시락을 까먹은 뒤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한 두 시쯤 등교하곤 했다.

그런 그가 걸어가면서 빈 도시락통의 쩔렁쩔렁 소리를 내는 바람에 ‘저기 깡통간다’는 소리를 듣게됐다. 이 때문에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교감선생님이 그의 책상을 운동장 가운데에 갖다놓고 “얘같은 학생만 되지 말라”고 훈시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기행은 대학에서도 계속됐다. 음대에 진학해 목관악기인 바순을 연주했던 그는 모차르트곡을 연주하던 도중 느낌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즘 시가로 8000만원쯤 나가는 바순을 세 개씩이나 아궁이에 집어 넣어 태워버렸다. 그 이후 다시는 악기를 잡지 않기로 결심했다지만 이 일로 그는 집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쫓겨나 지하철역에서 자며 연극판을 기웃거렸다고 한다.

[내 라이벌은 한석규]

그의 이런 몰아에 가까운 집중력은 연기에서도 십분 발휘됐다. 영화를 볼때마다 꼬박꼬박 감상문은 물론 명장면의 스케치까지 곁들여 쌓아둔 것이 몇 박스 분량이나 된다.

“연기는 인생의 직 간접적 경험에서 우러나는 만큼 자신에게 투자를 많이 해야합니다. 음악회도 가고 영화도 보고 사람들도 두루 만나보고. 그런 의미에서 진짜 연기는 40대이후부터라고 생각해요.”

그는 또한 한석규 같은 절친한 후배에 대한 벤치마킹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영화 출연을 결심하면서 한석규가 왜 인기가 있는지, 그의 작품을 모두 분석했어요. 이런 표정, 저런 자세, 대본을 골라내는 안목까지. 그러면서 어떻게 한석규와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했죠.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는 첫 카드인 ‘베사메무쵸’가 실패하면 겸허하게 다시 TV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그는 ‘허준’의 이병훈 PD, 최완규 작가가 만드는 MBC의 TV드라마 ‘상도’의 주인공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상태. 만약 영화에서 대박이 터진다면? 그는 빙그레 웃으며 강렬한 악역이나 멋진 멜로에 도전해보겠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인터뷰서 못다한 말]]

●“어린이들이 즐겁게 찾아올 수 있는 아동병원을 세우는 거다. 1층은 어린이들이 원시인 복장의 간호사들과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꾸미고 싶다. 윗층은 치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를 입주시킨다. 이름은 ‘공룡병원’이다. 이미 구체적인 건립 계획을 갖고 있으며 같이 힘을 모을 사람들도 확보하고 있다. 장소 선정만 남았다.” (인생의 최종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곤지암에서 하산해 막바로 MBC 정문을 들어서면서 ‘꼭 최고가 되고 말겠다’고 했던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게 너무 기뻤다.” (지난 연말 MBC 연기대상 수상 소식에 주먹 쥔 팔을 힘껏 당긴 이유를 묻자)

●“영화는 2년안에 승부를 내고 말겠다.” (방송에서 정상에 서는 데 10년이 걸린 것에 비해 영화는 얼마의 시간을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덜렁거리는 성격이어서 30만원만 쥐어줘도 돈을 못 센다. 한번은 100만원을 세는데 만원짜리를 한 장 한 장 바닥에 두고 세다보니 15분이상이 걸렸다.” (평소 성격도 드라마에서처럼 진지하냐는 질문에 정색을 하고 ‘그렇지 않다’며)

●“나는 (조명)라이터가 비치면 약간 돌아버린다. 신기(神氣) 가까운 것을 느끼기도 하는데 일년에 한두번은 오르가즘까지도 느낀다. 연기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연기할 때 느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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