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맞닥뜨린 미술학원 원장 김모씨(40·여). 25세에 처음으로 코 높이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까지 최소 60여번 수술을 받았다. 콧방울 확대술, 콧잔등 실핏줄 제거술 등 코에만 5번 칼을 댔으며 15군데를 뜯어 고쳤다. 수술비용만 1억600만원(그림). 얼굴이 흉터투성이가 돼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됐지만 김씨는 계속 수술을 원하고 있다.
정신과에선 특히 김씨처럼 강박적으로 미용수술에 매달리는 것을 ‘신체이형장애’ 또는 ‘추모공포증’으로 진단한다. 성형외과 피부과 전문의들은 “환자의 20∼30%는 고칠 데가 없는데도 수술을 고집하며, 이 중 5∼10%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극단적인 신체이형장애 환자”라고 말한다. 서울 강남에만 ‘극단적 중증’만 최소 50여명이란 것이 이 지역 성형외과 의사들의 귀띔. 성형중독증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외형 중시 풍조’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결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이영호 교수는 “한국 사회는 구성원 대부분이 외모나 몸에 만족하지 못한 채 겉모습에 집착하는 병적인 외형 불만족 사회”라고 진단했다.미용성형뿐만이 아니다. 체중이 정상인 여성이 다이어트에 병적으로 빠져 몸을 망치면서까지 살을 빼려고 한다.
‘겉모습’에 집착하는 것은 남자도 마찬가지. 성기능에 이상이 없는 남성 중 상당수가 음경확대 길이연장 귀두확대 등 ‘기묘한 시술’에 집착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미스코리아’ ‘슈퍼모델’을 운운하며 자녀의 키에 유난히 매달린다. 이들을 겨냥한 ‘키 키우는 식품’만 20여개가 나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모습은 외국인의 눈엔 유난스럽게 비쳐진다.
지난달 21일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을 ‘종아리 근육을 제거하는 극단적인 성형수술을 하는 유일한 나라’로 보도했다. 이는 ‘무다리’가 푸대접받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겉모습’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성형 중독의 한국 사회상을 꼬집은 것.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일본인에 대해 왜소 콤플렉스를 가졌다고 비판하지만 우리 민족도 열등감이 심해 이를 보상하기 위해 체면 외모 형식 등을 중시해왔다”면서 “여기에 ‘비디오’를 중시하는 분위기와 자본주의적 상업성이 더해져 극단적인 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외모와 외형’에 대한 콤플렉스와 열등감은 사회적으로도 확장된다. 가게 안보다 간판, 실력보다 학벌과 출신배경이 앞서고 ‘아시아 최고’ ‘세계 최고’ 등 화려한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 사회다. 한국에게 ‘미국’은 ‘절대 선’이 되다시피 했다.
회사도 내실보다 외형에 집착해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했고 그것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불러왔지만 그 풍토는 여전하다. 대우증권 투자전략팀 이종우 팀장은 “주식투자 등에서도 기업의 내실이나 내재가치보다는 상장 여부 등 외형을 우선시하는 ‘인수와 개발(A&D)’ 등 비합리적인 풍토가 그대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형 집착은 자라나는 새싹의 가슴을 시커멓게 멍들게 한다. 1남1녀를 둔 주부 박모씨(40·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요즘 딸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울면서 ‘친구들이 코가 크다고 놀린다’며 코를 작게 하는 수술을 해달라고 떼를 써 괴로워요.”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자아정체감이 없는 사람은 쉽게 신체이형장애에 빠지게 되면서 본질보다는 외형에 집착하게 된다”면서 “사회 전반에 인격과 개성이 존중되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외모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오명철차장(팀장·이슈부)이성주 이호갑 이은우 김준석기자(이상 이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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