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개막을 앞두고 해외파 선수들이 줄줄이 마이너리그로 추락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의 근황은 국내 프로야구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 정도다.
이종범(31·주니치 드래곤스)이 16일 2군으로 떨어진 것을 비롯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한국인 삼총사' 정민태(31) 정민철(29) 조성민(28) 역시 2군행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구대성(오릭스 블루웨이브·32)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주전 마무리 투수 후보로서의 자격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진출선수 대부분이 고교 및 대학출신인 반면 일본에서 활동중인 이종범과 정민태 정민철 구대성은 국내프로야구 최고스타 출신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추락'은 곧바로 한국프로야구의 위상저하로 연결된다.
한국프로야구는 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때 '드림팀'을 구성해 성가를 올렸다. 라이벌인 일본을 보기좋게 누르고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따냈다.
물론 당시 일본 대표팀이 제대로 된 '드림팀'이 아니라 정확한 비교는 힘들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때 이승엽이 일본이 자랑하는 '괴물신인'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승타를 날리는 순간, 야구관계자들은 '한국야구의 위상이 한단계 높아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런 소리가 성급한 자화자찬 이었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가만히 따져보면 일본에 진출한 국내프로야구의 스타급 선수들중 제대로 활약한 선수는 '나고야의 태양' 선동렬 뿐이다. '국내무대는 좁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던 나머지 선수들은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선 '야구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종범도 일본에서는 3년동안 1,2군을 들락거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들어 일본프로야구계에서 한국 선수의 스카우트에 대해 회의론이 일고 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카우트 관련 책임자는 "만약 현재 같은 상태로 한국 선수의 활약이 미미할 경우 우리 팀은 물론이고 일본 어느팀에서도 당분간 데려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자존심을 긁었다.
한국프로야구의 최정상급 선수들이 일본무대 적응에 실패하는 것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경기 내적인 요인외에 감독과의 불화설, 외국인선수에 대한 텃세, 잘못된 팀 선택 등 경기외적인 원인 분석도 상당수 나온다.
그 대표적인 예가 주니치의 이종범. 이종범은 올 시범경기에서 16타수 5안타 타율 0.315를 기록했으나 호시노 감독에게 '미운털'이 박혀 2군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이종범이 지난 가을훈련인 구라시키 캠프와 올 1월의 자율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 호시노 감독의 노여움을 샀다는 분석이다.
정민철 역시 지난 2월초 일종의 '항명파동'을 벌였다. 요미우리의 나가시마 감독을 상대로 "나가시마 감독은 강속구 투수를 좋아한다. 나는 감독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라며 "내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뛰겠다"고 선언한 것.
정민철 파동은 당시 오릭스에서 특사대접을 받고 있던 구대성과 비교되어 국내에서 '애초부터 팀 선택이 잘못됐다'는 비판여론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적'이다. 정민태, 정민철, 조성민, 구대성 모두 시범경기의 성적이 신통치 않다. 이들이 국내프로야구에 있다면 시범경기의 부진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지만 일본의 경우는 사정이 180도 다르다. 이들의 실력을 공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시범경기 성적이기 때문이다.
주니치에서 96년부터 99년까지 4년간 뛰었던 선동렬 KBO홍보위원은 최근 한 스포츠지와의 인터뷰에서 "참고 기다리며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코칭스태프로 신임을 얻지 못하는 선수는 아무리 야구를 잘해도 2군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역설했다.
일본야구계에 정통한 어우홍 해설위원은 "구대성은 일본야구 적응을 끝내고 시즌에 들어가면 제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정민철 정민태 조성민은 어려운 한해를 보낼 것 같다"고 내다봤다.
어위원은 "이종범의 경우는 시즌이 들어가면 1군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호시노감독이 이미 기량이 확인된 이종범을 2군으로 내려보낸후 얀로등 외국용병의 기량을 시험해 보고 있다는 것이 어위원의 판단.
어위원은 "일본야구의 경우 감독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며, 특히 한국선수들이 몸담고 있는 요미우리나 주니치는 감독의 영향력이 가장 큰 팀중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최용석/동아닷컴 기자 duck8@donga.com
▼어우홍 해설위원과의 일문일답▼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의 올시즌 전망은?
"일본 프로야구 해설자들이나 스포츠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볼때 구대성은 시즌에 들어가면 제몫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대성에게는 다소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요미우리의 정민철 정민태 조성민은 어려운 한 해를 보낼 것 같다. 정민철은 구도, 우에하라, 사이토, 구와타 등 두터운 선발진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만한 구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민태의 경우 계속 1군에서 뛰기는 어렵다. 선동렬과 이상훈도 일본진출 첫해에는 던질 포인트가 안보인다고 어려움을 토로했었다.
일본타자들은 타석에서 자신의 약점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또 일본야구는 상대투수에 대한 정보분석력이 대단하다. 일본타자들은 '어느 구질의 공을 노려라'라는 아주 구체적인 정보를 듣고 타석에 들어선다. 당연히 백전백패다. 투수들이 타자들의 약점을 알고 던지기까지 한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종범은 시즌이 시작되면 1군에서 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호시노감독이 이종범은 '완성품'이라고 보고 2군으로 내려보낸 뒤 얀로등 용병들의 기량을 시험해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야구와 한국야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 프로야구는 저변이 대단히 탄탄하다. 1군으로 올라올 기회를 엿보는 선수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감독의 영향력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또 일본야구는 어릴적부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선수를 길러낸다. 일본에 비교해보면 우리는 '소질'을 가지고 야구를 하는 것이지 '훈련'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야구 기초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동안 한국야구는 체력을 중시했다. 이는 창조적인 야구, 머리를 쓰는 야구를 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본야구가 기술만을 중시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현대스포츠는 모두 힘을 바탕으로한 기술을 강조한다. 일본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다 일본은 뛰어난 정보분석력도 갖추고 있다.
-그럼 일본의 야구감독과 한국의 야구감독의 위상에도 차이가 있나?
야구는 머리 80%, 체력 10%, 기술 10%로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지언론에서 올 시즌 리그1위로 요코하마를 지목한 것은 바로 새로 부임한 모리감독 때문이다. 모리감독이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적재적소에 배치할 것이라는 판단때문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 감독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특히 '이기는 야구'를 해야 하는 자이언츠의 나가시마 감독이나, 선수들을 다루는데 있어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는 주니치의 호시노 감독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감독으로 손꼽힌다.
-일본진출선수들이 가져할 자세는?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중요하다. 특히 감독과의 불화설등은 선수들에게 전혀 이득이 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