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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30년전 사건' 추적하나 |
그가 30년 만에 세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는 억울하다”고. 그는 “이대로 눈을 감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정씨는 99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해 계류 중이다. 또 사건 발생 직전 피해자인 초등학생이 정씨가 운영하는 만화가게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경찰과 검찰, 법정에서 진술해 정씨의 기소와 유죄판결에 직접 영향을 미쳤던 증인 중 한 명은 13일 본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의 회유와 강압에 못 이겨 허위진술을 했으며 30년 동안 양심의 가책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경찰관과 검사, 판사는 대부분 “수사와 재판에 문제는 없었다”고 말한다.
정씨는 정말 진범인가, 아니면 고문과 조작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인가.
사건은 72년 9월27일 밤 춘천시 우두동 농촌진흥원 소유 논두렁에서 발생했다. 피해자는 당시 춘천 Y파출소 소장의 딸인 S초등학교 5학년 장모양(11). 장양은 하의가 벗겨져 강간당한 뒤 목 졸려 숨진 채 다음날 오전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는 박정희(朴正熙) 정권의 ‘10월 유신’과 비상계엄령 선포 한 달 전으로 사회분위기가 경직된 상황이었다. 이 사건 등 몇 가지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당시 김현옥(金玄玉) 내무부장관은 10월10일까지 시한을 정해 범인을 검거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렸고 특별수사본부를 차려 범인검거에 총력을 기울여오던 경찰은 검거시한을 31시간 앞두고 정씨를 ‘범인’으로 전격 발표했다.
경찰과 검찰은 정씨의 자백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보강증거로 내세워 기소했다. 물증은 없었다. 정씨는 다음해 11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정씨는 재심청구서에서 “경찰이 몸을 거꾸로 매달고 코에다 물을 부으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불러 줘 그대로 받아서 말했으며 그것이 자백조서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언도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증인들의 진술도 뒤바뀌었다. 사건발생 직전 피해자 장양이 정씨의 만화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 한모씨(39·당시 S초등학교 4년·강원 홍천군 거주)는 13일 취재팀에 “수사 당시 경찰이 겁을 주고 사탕을 사주는 등 협박과 회유를 해 허위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짜 맞추기 수사를 했다”며 “어린 나이에 겁이 나서 경찰이 시키는 대로 말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씨가 주장하는 ‘30년 전의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이수형기자·춘천·홍천〓이명건기자>sooh@donga.com